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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포장용 테이프·노끈 사라진 첫날… “배기가스 유발 정책”

중앙일보

입력

장바구니 활성화 자율협약 첫날인 1일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박스를 접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장바구니 활성화 자율협약 첫날인 1일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박스를 접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장바구니 활성화 자율협약 첫날

“시민 불편하게 하는 방법도 가지가지네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거주하는 김모(49)씨는 1일 오전 이마트 죽전점 자율포장대 앞에서 구입한 제품을 챙기다 이렇게 말했다. 이날은 대형마트에서 포장용 노끈과 테이프를 모두 치운 첫 날이다. 환경부와 ‘장바구니 사용 활성화 점포 운영 자발적 협약’을 체결한 롯데마트·이마트·홈플러스는 더는 소비자에게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을 제공하지 않는다.

1일 이마트 자율포장대. 테이프와 노끈을 걸어두던 거치대를 막 떼어낸 흔적이 보인다. 용인 = 문희철 기자.

1일 이마트 자율포장대. 테이프와 노끈을 걸어두던 거치대를 막 떼어낸 흔적이 보인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이마트 죽전점은 매장 출입구와 에스컬레이터, 계산대 상단, 그리고 자율포장대에 ‘노끈·테이프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을 붙였다. 이 매장에서 근무하는 계산원·경비원은 테이프를 달라고 요구하는 소비자에게 “환경부 지침으로 제공하지 않는다”고 안내했다.

환경부, 플라스틱 폐기물 감소 유도 

1일 이마트 자율포장대에서 직접 종이상자를 접고 있는 소비자. 용인 = 문희철 기자.

1일 이마트 자율포장대에서 직접 종이상자를 접고 있는 소비자. 용인 = 문희철 기자.

환경부가 이런 제도를 도입한 건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고 장바구니 사용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대형마트 3사는 연간 202만7489개(48만687㎏)의 포장용 테이프와 35만3260개(17만8140㎏)의 포장용 노끈을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상암구장(9126㎡) 857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수준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한다. 포장용 테이프가 붙어있는 종이상자는 재활용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제도 시행 첫날 테이프·노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를 듣고 “다음엔 장바구니를 가져와야겠네요”라고 공감하는 소비자도 있었다. 장기적으로 장바구니를 활성화하려는 정부의 목표가 통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1일 이마트 죽전점 지하 1층과 1층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소비자가 장바구니를 대여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1일 이마트 죽전점 지하 1층과 1층을 오르내리는 에스컬레이터에서 한 소비자가 장바구니를 대여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이날은 그동안의 우려와 달리 매장 자율포장대에서 종이상자 하단이 터지는 사례도 없었다. 혹시나 불안해할 소비자를 위해 이마트는 부직포로 제조한 대용량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도 하고 있었다. 17L 장바구니(해달이)는 500원, 35L(반달곰)와 56L(코끼리)짜리는  각각 3000원에 빌려준다. 장바구니를 반납하면 보증금은 되돌려 받을 수 있다.

주요 대형마트는 출입구 전광판에서 포장용 노끈과 테이프 제공을 중단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주요 대형마트는 출입구 전광판에서 포장용 노끈과 테이프 제공을 중단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아마추어 행정” 불만 터트리기도

제도 변경을 모르고 장보러 온 일부 소비자 불만은 컸다. 가족과 함께 전을 부치기 위해서 밀가루·포도씨유·소고기 등을 산 이모(58)씨는 “포장용 테이프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혼자 장을 보러 왔다”며 “혼자 들려면 종이상자 1개에 모든 제품을 넣어야 하는데 혼자 들기엔 너무 무겁다”라고 말했다.

환경 보호 취지는 훌륭하지만,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모(63)씨는 “오후에 놀러올 손자에게 줄 장난감을 샀는데, 스티로폼·포장재 크기가 지나치게 크다”며 “대형마트에 많은 과대포장 제품은 그대로 두고, 왜 소비자만 골탕 먹이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자율협약 시작을 앞두고 시작된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 용인 = 문희철 기자.

자율협약 시작을 앞두고 시작된 장바구니 대여 서비스. 용인 = 문희철 기자.

민씨와 함께 장을 보러 온 박모(66)씨도 “포장용 노끈 원재료를 단일화해서 분리수거해서 재활용하고, 재활용이 가능한 재질의 포장용 종이테이프로 바꾸면 된다”며 “취지는 좋지만, 소비자 불편을 강요하는 해결 방법은 전형적인 아마추어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한 번 대형마트에 오면 최소 30만원어치 이상 산다”며 “(가장 큰) 56L 장바구니에도 다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날 인근 롯데몰 수지점 롯데마트와 홈플러스 분당오리점에서도 오전 내내 비슷한 실랑이가 이어졌다.

이마트에서 대여하는 장바구니 중 가장 용량이 큰 56L 장바구니. 용인 = 문희철 기자.

이마트에서 대여하는 장바구니 중 가장 용량이 큰 56L 장바구니. 용인 = 문희철 기자.

“장바구니 제조와 차량 운행 늘어날 수도”

이마트 계산대 곳곳에는 차량을 기다리는 장바구니가 대기하고 있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이마트 계산대 곳곳에는 차량을 기다리는 장바구니가 대기하고 있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이마트 죽전점에서 걸어서 3분 거리인 동성 2단지 아파트에서 거주한다는 김모(50)씨는 이날 오전 저녁에 마실 맥주를 샀다. 그는 “교차로를 건너다가 종이박스가 터지면 새해 벽두부터 기분이 잡칠 것 같아서 아내에게 차를 가지고 주차장으로 오라고 전화했다”며 “노끈을 줬다면 차를 안 타도 되는데, 굳이 (배기가스를 배출하는) 승용차를 몰게 하는 정책이 과연 친환경적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다른 김 모(54)씨도 “매번 장바구니를 가져올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며 “장바구니 구매·소비량이 늘어나면 오히려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마트 자율포장대에 쌓여있는 종이상자. 용인 = 문희철 기자.

이마트 자율포장대에 쌓여있는 종이상자. 용인 = 문희철 기자.

전자상거래(이커머스·e-commerce) 기업과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환경부는 폐기물을 감축하기 위해서 플라스틱·스티로폼 포장재를 사용해서 택배로 제품을 발송하는 이커머스 기업에 종이상자 사용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포장용 테이프와 종이박스를 사용한다. 배달업계도 대부분 플라스틱·스티로폼 등 일회용 용기에 담은 음식을 배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부가 유독 대형마트 이용자에게만 장바구니 사용을 강요한다는 것이 소비자 불만이다.

1일부터 대형마트는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박스를 접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1일부터 대형마트는 포장용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을 소비자에게 제공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분주하게 박스를 접고 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대형마트는 난처한 입장이다. 자율협약을 빙자한 정부 규제도 준수해야 하지만, 소비자 불만은 고스란히 눈에 보이는 대형마트를 향한다. 이마트 죽전점 관계자는 “일단 정부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면서 민원이 빈번하게 제기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본사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용인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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