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금인데 어떻게 레바논 갔지? 카를로스 곤 출국에 日 발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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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일본 법원의 출국금지 명령을 어기고 레바논으로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본 검찰에 기소된 곤 전 회장은 지난 4월부터 보석으로 도쿄 자택에서 기거 중이었다. [AP=연합뉴스]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일본 법원의 출국금지 명령을 어기고 레바논으로 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일본 검찰에 기소된 곤 전 회장은 지난 4월부터 보석으로 도쿄 자택에서 기거 중이었다. [AP=연합뉴스]

"나는 지금 레바논에 있다."

日정부 '출국사실' 파악 못하고 당황 #변호인단도 모르게 은밀히 도피 진행 #곤 성명 통해 "日사법제도의 인질이었다" #'곤 처내기'는 日 정부 작품…의혹도 #청소년기 보낸 레바논선 정부도 지지 #

개인 비리 혐의로 일본 검찰에 기소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31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성명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지난 4월 보석으로 풀려난 곤 전 회장은 출국금지 상태로 도쿄 자택에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돌연 무단 출국한 사실이 공개되자 일본이 발칵 뒤집혔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곤 전 회장이 출국한 사실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이날 새벽 외신들이 일제히 곤의 레바논 입국 사실을 보도하고서야 진상 조사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NHK에 "원래 출국하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우리가 사전에 알았다면 법 집행 기관에 통보해야만 하는 내용"이라고 방송에 말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곤 피고의 출국이 사실이라면 일본 국내 사법 절차가 제대로 진행되도록 외교루트를 통해 레바논 정부에 협력을 요청할 수 있다"고 방송에 밝혔다.

곤 전 회장의 출국은 변호인단도 모르게 은밀히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날 곤 전 회장의 일본 내 변호인 한명은 기자들에게 "크리스마스 이브에 전화통화로 곤 전 회장이 부인 등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했다"며 "(우리도 출국사실을 듣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 4월 25일 도쿄지방재판소는 곤 전 회장의 보석을 허가하면서 출국금지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곤 전 회장은 자신이 법원의 명령을 어기고 출국한 것과 관련해 성명에서 "이미 유죄가 예상되는 일본의 불공평한 사법제도로부터 풀려났다"며 "(일본에선) 차별이 만연하고 인권이 침해되는 등 일본이 준수해야만 하는 국제법이나 조약이 완전히 업신여겨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나는 정의로부터 도망친 것이 아니라 불공평함과 정치적인 협박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라며 "이제 간신히 언론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게 됐다. 다음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곤 전 회장은 다중국적자다. 레바논계 조부를 둔 브라질 출신 이민자로 프랑스에 귀화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브라질에서 태어나 6세 때 레바논으로 이주한 곤은 레바논에서 고교까지 다녔다. 그는 터키를 경유해 개인 전용기로 지난 29일 밤 레바논에 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4월 25일 보석으로 풀려날 당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경호를 받으며 도쿄지방재판소에서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4월 25일 보석으로 풀려날 당시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이 경호를 받으며 도쿄지방재판소에서 나오고 있다. [AFP=연합뉴스]

앞서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해 11월 이후 4차례에 걸쳐 곤 전 회장을 체포해 수사했다. 곤 전 회장은 자신의 임원 보수비 총 91억엔(약 964억원)을 유가증권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고(금융상품거래법 위반), 오만의 지인에게 송금하면서 회사법을 어겼다(특수배임)는 혐의로 기소됐다.

곤 전 회장 측은 일본 정부의 의중이 검찰 수사에 반영돼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르노가 닛산을 완전히 통합하려 준비하는 가운데 곤 전 회장이 전격 체포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일본 정부가 자동차산업을 자국 기업끼리 재편하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다.

곤은 1990년대 후반 도산 위기였던 닛산을 살려낸 장본인으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연합)’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닛산 내에선 그가 20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르노에 유리한 경영적인 판단만 한다는 불만이 잠재돼 있었다. 일본인 경영진들이 곤을 축출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듯 비리 관련 자료를 통째로 검찰에 제출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란 것이다.

수사와 체포, 기소 과정에서 곤은 줄곧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특히 레바논에선 곤에 대한 동정 여론이 일었다. 지난해 11월 곤이 처음 체포됐을 때 레바논 외교장관은 베이루트 주재 일본대사를 초치해 체포 경위를 묻기도 했다.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 변호인단을 파견할 계획까지 세웠다.

이 때문에 이번 레바논행을 둘러싸고도 레바논 정부가 모종의 역할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일본 언론은 이번 사태가 일본과 레바논간 외교 갈등으로 비화될 소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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