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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거부권 행사 뭘 얻겠다는 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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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해명하는 게 구차하고 불필요하다.”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 둘러댄 이유다. 검사의 혐의 추궁에 대해 부인도 아니고 묵묵부답으로 버틴다는 거다. 방어 전략으로 꺼낸 카드겠지만, 권력 실세로 통하는 전직 장관을 상대로 살얼음판 걷듯 조사했을 수사팀으로선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진술 거부라는 보도를 보고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랐을 것 같다. 장관 임명 전에 기자간담회 등을 자청해 자신과 가족들에게 쏠린 갖가지 의혹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던 모습과 너무 달랐으니까. 여론이 좋을 리 없다. 당연한 권리 행사인데 어쩌겠느냐는 사람도 있지만, 법률에 무지(無知)해 방어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내세울 권리 뒤에 숨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쪽이 더 많다. 여론 향배를 아랑곳하지 않고 마이웨이로 가는 건, 검찰에 대한 강한 불신과 함께 검찰 기능을 무시하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당연한 권리의 행사임이 틀림없지만, 어쩐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든다. 역사적으로 봐도 그렇다. 유죄의 자백을 받아내려고 고문(拷問) 등을 하지 못하게 하는 방패로 등장한 게 진술거부권 아닌가. 무고한 사람이 부당하게 처벌받지 않도록 해주고, 비록 죄를 범했더라도 자신의 유죄 입증에 협력을 강요하는 건 인간의 존엄을 해친다는 진술거부권의 이념적 기초를 떠올려 봐도 이건 아니다 싶다.

법의길 12/25

법의길 12/25

실무상으로 진술거부권이 행사되는 사례가 거의 없는 이유가 뭘까. 검사의 신문에 응해 혐의에 대해 해명하느라 애쓰는 사람 중에는 무혐의나 기소유예 등을 기대하고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을 거다. 하지만 재판에 넘겨질 게 뻔한 경우에도 진술 거부가 거의 없다는 것은, 혐의를 다투더라도 검찰 단계에서 충분히 해명해 두는 게 공판절차에서 유리하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 아닐까. 재판절차가 효율적으로 진행되길 바랄수록 사전 스크린 기회가 되는 검사의 신문 절차를 활용하려고 한다는 말이다.

실제 진술 거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 공안사건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고 형사사법에 대한 강한 불신을 표출하는 정치적 제스처로 동원되는 게 진술거부권이다. 진술거부권 자체에 불이익 추정의 금지가 내포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구속의 사유 중 하나인 증거인멸 우려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결국 진술 거부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장관이 아닌 형사법 전공 교수로서 양심에 어긋나는 처신을 해, 많은 걸 잃는 것 같아 안타깝다. 형사사법 절차에서 검사가 하는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걸 모를 리 없다. 판사가 해야 할 일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주도록 사전 스크린 하라고 설계된 것이 검사의 피의자신문 아닌가. 그걸 너도나도 무시하려고 달려들면 형사사법이 제대로 굴러갈까. 자백하는 사건을 공판단계에서 신속 처리할 수 있는 건 소송법이 검사의 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했기에 가능하다. 그런 소송경제의 측면도 무너뜨려선 안 된다.

형사사법 제도를 존중한다면, 진술거부권 행사로 검찰 기능을 무시하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행동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교수로서 학자적 양심이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진술 거부라는 정치적 제스처로 뭘 얻기는커녕 사법을 방해하는 것처럼 보여서야 되겠는가.

문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