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진 "가장 미안했던 이는 '만득이'라 부른 유시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제일 미안했던 사람은 분명히 있다. (연초 개각 당시) 새롭게 기용됐던 유시민 장관까지 포함해 모두 5명에게 가장 미안하다. ”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최근 물러난 이계진 의원이 25일 대변인 활동 당시 가장 미안했던 사람으로 유시민 보건복지부장관과 함께 이상수 노동부장관, 정세균 산업자원부장관 등을 꼽았다.

8개월간의 대변인 생활을 마친 이계진 의원은 강성 이미지의 전임 전여옥 대변인과는 달리 ‘소변인(笑辨人)’을 자처하며 은유적이고 유머러스한 논평으로 주목을 받았다. 실제 이계진 의원은 대변인 활동을 마칠 당시 “고소 한 번 당해보지 못하고 끝냈다”고 익살 섞인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계진 의원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뉴스레이다’에 출연, 대변인이라는 직분 때문에 인간적인 친분이 있는 분들에게까지 날을 세워서 이야기할 때 참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이계진 의원이 미안함을 표시한 인사들은 1월초 개각 당시 입각한 인사들. 학교 선후배 관계 등 인간적인 친분 때문에 직접적인 비판보다는 아호(雅號)를 만들어 은유적으로 인사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가 돼버린 것.

이계진 의원은 당시 유시민 장관의 내정과 관련 “‘뒤늦게 장관직을 얻었다’고 하여 늦을 만(晩), 때 시(時), 얻을 득(得), 벼슬 관(官) 자를 사용해서 만시득관(晩時得官), 그래서 아호는 ‘만득이’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세균 장관의 내정과 관련 “당의장이 일개 장관직도 감지덕지 하는 모양이 좋지 않다. ‘여당지상 청와지하(與黨之上 靑瓦之下)’”라면서 ‘청하(靑下)선생’이라고 칭했다. 또한 이상수 장관의 경우는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면서 ‘지천(地天)선생’이라고 불렀다.

아울러 김우식 과기부총리는 전임 오명장관은 밀어내고 들어갔으니 ‘퇴오(退吳)선생’,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항상 북쪽을 향해 일한다는 의미에서 ‘향북(向北)선생’이라고 불렀다.

이 의원은 이와관련 “개인적인 친분도 있는 분들인데 부당하다는 논리로 이야기할 때 참 어려웠다. 사실 당에서 볼 때 부당한 인사라고 분명히 생각을 했다. 그래서 은유적으로 아호를 지었는데 의도와는 달리 보다 강한 공격이 되어서 인간적으로 참 미안했다. ”

이계진 의원은 대변인 재직 당시 가장 힘들었던 순간으로 △사학법 투쟁으로 인한 여야 대치 상황 △ 5·31 지방선거 유세 도중 박근혜 대표에 대한 테러 사건 등을 꼽고 퇴임 직전 북한의 미사일 문제 등도 어려웠던 기간이라고 말했다.

특히 수해골프 파문이 나기 전 물러나 다행이라는 지적에는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골프파문을 거론, 대변인 역할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해찬 총리가 물러날 때 역지사지로 생각해보면 같은 처지인데 그 때 당의 입장에서 총리의 골프회동에 대해서 공격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일을 저지른 쪽이 됐다. 한 입을 갖고 어떻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할 것인가. 물론 죄송하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쪽에 대한 합리화시키는 생각을 하면서 죄송하다고 말을 할 때 정말 떳떳하지 못하거든요. ”

이계진 의원은 “그런 갈등을 느끼면서 논평을 할 때 대변인으로서 괴롭다”면서 “남은 욕하고 나는 합리화해야 되는 인간의 속성 그런 갈등이 많이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이계진 의원은 정계입문 전 한국을 대표하는 베테랑 아나운서로 활동해온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말과 글의 전문가. 하지만 대변인 재직 당시 ‘말’과 ‘글’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을 인터뷰 곳곳에서 드러냈다.

대변인 활동 당시 최대 위기는 야구월드컵이라고 일컬어진 월드배이스볼클래식(WBC) 논평. 한국팀은 당시 일본과 미국을 통쾌하게 누르며 4강 신화를 이룩했다. 이와 관련한 이 대변인의 역설적인 축하 논평은 물의를 빚었다.

이계진 대변인은 당시 “한나라당이 걱정하는 것은 한국 야구의 연승이 일본을 자극해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거나 미국을 자극해 동북아 안보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아닌지 하는 것”이라는 농담조의 논평을 발표했지만 ‘우리가 정말 강대국에 도전해도 되느냐’는 식으로 인식되면서 공식사과해야 했다.

이 의원은 “평범한 칭찬과 축하로는 모자랄 것 같아서 지독한 반어법을 사용한 것”이라면서 새롭고 강한 방법으로 축제 분위기를 돋구려고 했지만 문제 삼는 분들이 있어 참 어려웠다고 아쉬워했다. (서울=데일리서프라이즈/뉴시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