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집값 이렇게 오르는데 대출해준다고 살 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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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은성수 위원장은 17일 ’지금이 버블이고, (집값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은성수 위원장은 17일 ’지금이 버블이고, (집값이) 영원히 오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하는 초고가 아파트의 기준선을 얼마로 할 것인가. 12·16 부동산 대책 발표를 앞두고 금융위원회가 마지막까지 이를 고민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만 피해 본다 비판에 반박 #“서울 집값 너무 올라 버블 우려 #13억, 15억, 18억 끝까지 기준 고민 #나도 세종시에 가진 집 팔겠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12·16 부동산 대책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일부 소개했다. 은 위원장은 “(시뮬레이션) 분석해서 (15억원을) 정한 것은 아니다”라며 “학문적 연구가 아닌 정책은 어디선가 결정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적정선을 고민한 끝에 내린 정책적 판단이란 뜻이다. 금융위는 초고가 아파트의 기준선으로 세 가지(시가 13억원, 15억원, 18억원)를 놓고 고민한 끝에 15억원을 선택했다.

은 위원장은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가 전국에 약 2%, 서울엔 10% 내외 있다”며 “15억원 정도의 아파트가 집값(상승)을 선도한다는 부동산 점검반의 현장 의견도 감안했다”고 덧붙였다.

12·16 부동산 대책이 긴급하게 발표된 배경엔 최근의 심상찮은 서울 집값 상승세가 있었다. 은 위원장은 “집값이 몇 주 사이에 많이 올랐다”며 “(부동산 대책이) 이성을 찾고 집값이 원래대로 다시 작동되는 계기가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집값이 당장 폭락한다는 건 아니지만 (주택) 가격을 냉정히 따지면 너무 올랐고 지금도 버블(거품)에 대한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특히 서울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에 민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2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 주간 상승률은 0.17%로 지난해 9·13 대책 이후 최대 상승을 기록했다(9일 조사 기준). 이런 추세로 가다가는 상승률이 0.2%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정부의 위기감이 부동산 대책을 서두르게 했다.

정부는 대책 마련 과정에서 철저한 보안을 강조했다. 관계부처 회의용 내부 문서엔 ‘외부 유출 시 형사 처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을 정도였다.

12·16 대책엔 여러 내용이 담겼지만 맨 앞에 대출 규제를 내세웠다. 대출 규제가 가장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이어서다.

은 위원장은 “금융·세제·거래질서·공급 대책 중 가장 빨리 조치할 수 있는 게 금융”이라며 “국회를 거쳐야 하는 재정정책과 달리 다음날 바로 조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초강력 대출 규제가 중산층의 서울 아파트 장만 기회를 줄인다는 비판에 대해 은 위원장은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가격이 계속 오르는데 대출할 수 있다고 중산층이 집을 살 수 있냐”며 “결국 가격이 안정돼야 중산층도 집 살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2주택 보유자인 은 위원장은 이 중 한 채를 매각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전날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과 관련한 질문에 “저도 마찬가지 계획”이라며 “어제 오후 5시쯤 세입자에게 집을 팔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노 비서실장은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을 향해 “이른 시일 안에 1채를 제외한 나머지를 처분하라”고 했다.

은 위원장은 서울 잠원동과 세종시에 아파트가 있다. 그가 팔기로 한 아파트는 세 주고 있는 세종시 아파트다. 2012년 5월 세종시 아파트를 2억3890만원에 분양받았지만 실거주는 하지 않았다. 이 아파트의 현재 가격은 3억8000만~4억2000만원이다(KB시세 기준).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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