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의 연세대 비공개 특강 "한반도 평화 포기하지 말아달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7일 특별강의를 위해 서울 연세대학교에 도착해 강의실로 향하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7일 특별강의를 위해 서울 연세대학교에 도착해 강의실로 향하며 밝게 웃고 있다. [연합뉴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7일 오후 1시 20분 연세대학교를 찾았다.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북·미 비핵화 협상 미국 측 수석대표가 난데없이 서울 시내 대학 캠퍼스에 나타난 것이다.

촉박한 일정 속 한국 대학생들 만난 비건 #북한에 바람 맞았지만 ‘경청 행보’는 여전

비건 대표는 ‘북한 측에서 연락이 왔느냐’ 등 질문을 쏟는 기자들에게 “당신들은 학생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농을 던지며 강의실로 향했다. 비건 대표는 전날 약식회견을 자청해 북한에 “만나자”고 공개 제안했다. 하지만 북측으로부터 연락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바람’을 맞은 격이지만 밝은 표정이었다.

비건 대표는 이날 김기정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외교정책론’ 수업에서 비공개 특강을 했다. 비건 대표는 “한반도 안정을 위해 한국의 젊은이들도 부단히 노력해주길 바란다”며 “한반도 평화의 꿈을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이어 “나도(비건 대표) 열심히 일하고 있으니 남북관계 등에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핵화 협상과 관련해선 “그간 미국과 북한의 목표가 달랐던 것 같다”며 “그러나 북한의 핵을 용인하면 동북아 핵무장이 우려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학생들도 날카로운 질문을 많이 던졌다”며 “비건 대표도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강연 분위기를 전했다. 강연은 50분 가량 이어졌다.

최근 북·미가 ‘강 대 강’ 대치 국면에서 비건 대표의 대학 특강은 이례적으로 여겨졌다. 한반도 정세가 살얼음판을 걷는 엄중한 상황에서 촉박한 일정을 쪼개 한국 대학생들을 만난 것이어서다.

비건 대표는 대북특별대표를 맡은 후 한반도 문제에 열정적인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부 당국자 외에 외교안보 전문가들도 적극적으로 만나 조언을 듣고 있다. 한동안 북한 지도를 서류철에 꽂고 다닌 일화도 있다. 김 교수는 “지난 8월 방한 때 비건 대표가 한국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다”며 “최근 북·미 상황이 만만찮아 취소할 줄 알았는데 예정대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비공개 강연을 마친 뒤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비공개 강연을 마친 뒤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스1]

비건 대표의 강연을 고려해 그의 한국 측 카운터파트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교섭본부장이 이날 연세대를 찾았을 정도. 강연 후 김포공항으로 가는 차량에서 잠깐의 시간 동안 추가 협의를 하기 위해서다. 2시쯤 학교에 도착한 이 본부장은 기자들과 만나 최근 상황을 공유했다.

“비건 대표의 만남 제의에 북측 반응이 있었나”

이 본부장: 미측이 공식적으로 만남을 제안했는데, 북측의 공식 반응은 없지 않느냐.

“미국이 한·미 연합훈련 유예 등 북측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제안을 했을지”

이 본부장: 무슨 제안을 하나 던지고, 또 얘기하고 이런 식의 협상 방식은 좋지 않은 것 같다. (미국은)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나오면 무엇이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연내에 북·미가 만날 기회가 있을까”

이 본부장: 북한이 응답을 언제든지 할 수 있죠. 아직 하루밖에 안 지났다.(웃음)

연말까지 보름 남짓 남은 만큼 북·미 대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의미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비공개 강연을 마친 뒤 공항으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비공개 강연을 마친 뒤 공항으로 향하는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뉴스1]

비건 대표는 강연을 마치고 이 본부장과 함께 나왔다. 강의실을 들어갈 때와 달리 다소 무거운 표정이었다. 그는 기자들 질문에 일체 답하지 않은 채 차에 올랐다. 2박 3일 간 방한 일정을 마무리한 비건 대표는 일본으로 건너가 다키자키 시게키(瀧崎成樹)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등과 만난 뒤 19일께 미국으로 돌아갈 것으로 알려졌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