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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중앙시조대상] 빈 화분에 담긴 시조의 진정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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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앙시조신인상

길을 가는데 플라타너스 이파리 하나가 품속으로 날아들었습니다. 일부러 잡으려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안겨 와 설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낙엽처럼 수상 소식은 저를 들뜨게 하고, 기쁨으로 넘쳐나게 합니다. 제 주위에는 삶 자체가 온통 시인인 분들이 참 많습니다.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농작물이 자라듯이, 저는 그분들 속에 서 있었을 뿐인데, 큰 상을 받게 되니 어깨가 매우 무겁습니다.

어릴 때 들은 동화 한 편이 생각납니다. 어느 나라에 임금님이 백성들에게 씨앗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예쁘게 꽃을 피워오는 사람에게 상을 준다고 했지요, 모두 아름다운 꽃을 피운 화분을 들고 왔지만, 임금님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구석에 빈 화분을 들고 서 있는 소녀에게 상을 주었다고 합니다. 나누어 준 씨앗은 삶은 씨앗이라 꽃을 피울 수 없었던 거지요. 그 소녀가 들고 있는 화분은 빈 화분이 아니라, 진정성이 꽃을 피운 화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정성이 꽃 피울 그 날을 기다리며, 화분을 들고 있는 모든 분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이라는 화분을 마련해 주신 중앙일보와 그 빈 화분의 진정성을 읽어 주신 예심, 본심 심사위원님들과, 흙으로 덮어 다독이고 격려의 물을 주신 모든 분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건널목 무대

일제히 멈추어선 기대도 안고 간다
겹쳐진 그림자도 발등에 업고 간다
신호등 바뀔 때마다 입장하는 등장인물

오고가는 길목에 쏟아지는 시선집중
살펴 볼 겨를 없이 떠밀려 간다 해도
막혔던 길을 젖히며 당당하게 손 흔든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에게서 너에게로
잠시 멈춘 그 사이 펼쳐지는 파노라마
나는 늘 주인공이다
이십초의 주마등

◆김석이

김석이 시조시인

김석이 시조시인

2012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당선, 2013년 천강문학상 우수상. 시조집  『소리 꺾꽂이』 『비브라토』  등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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