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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회 중앙시조대상] 어릴 적 새벽에 우유배달, 시적 감성의 거름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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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앙시조대상 

강현덕 시인은 ’시조는 내가 가진 언어가 폭발하도록 놔두지 않고 음보에 맞게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 정해진 틀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강현덕 시인은 ’시조는 내가 가진 언어가 폭발하도록 놔두지 않고 음보에 맞게 절차탁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 정해진 틀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가 폭발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정동 기자

국내 최고 권위로 꼽히는 시조문학상인 제38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작으로 강현덕(59) 시인의 ‘미황사’가 선정됐다. 중앙시조신인상은 김석이(59) 시인의 ‘건널목 무대’가 뽑혔다. 제30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에서는 김수형 씨가 ‘스몸비’로 등단했다.

등단 후 25년 만에 중앙시조대상 #고향의 자연이 시를 쓰는 자양분 #단청 없는 미황사 소탈함에 영감

중앙시조대상은 시집을 한 권 이상 펴냈고 등단 15년 이상인 시조시인, 중앙시조신인상은 시조를 10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조시인에게 수상 자격이 있다. 중앙신인문학상시조부문은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실시한 중앙시조백일장 입상자들로부터 새 작품을 받아, 그중 최고 작품을 가리는 연말 장원 성격이다.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예심은 시조시인 김남규·이숙경씨가, 본심은 시조시인 이정환·이달균, 문학평론가 박진임 평택대 교수가 맡았다. 중앙신인문학상시조부문은 염창권·이종문·최영효·김삼환 시인이 심사했다. 시상식은 20일 오후 4시 서울 프레스센터(서울 중구 세종대로124) 19층에서 열린다.

“내게는 중앙시조대상이 아니라 중앙시조대산이었다. 그 산을 넘는데 꼬박 25년이 걸렸다.”

10일 서울 광화문에서 강현덕 시인을 만났다. 그는 중앙시조대상 수상을 등반에 비유했다. “1994년에 중앙신인문학상 시조부문(중앙시조백일장연말장원)에 당선돼 등단했다. 그리고 꼭 10년 뒤에 중앙시조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15년 후인 올해 중앙시조대상을 받게 됐다. 등단한 지 25년 만이다. 이제는 ‘야호!’라고 한 번 외쳐볼 수 있는 시간이 내게도 왔구나 싶다.”

강 시인의 고향은 경남 창원의 시골이다. 앞에는 들판, 뒤에는 산이 우뚝 선 동네다.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이 작사한 노래 ‘고향의 봄’의 실제 배경이 이 마을이다. “당시 저희집에서 산양 네 마리를 키웠다. 시골이라 빨간 로고가 붙은 서울우유 병우유는 마을에 배달되지 않았다. 덕분에 동네 사람 모두가 저희 집 산양 우유를 배달시켜 먹었다. 먼 집은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배달했고, 가까운 집은 내가 배달을 맡았다. 새벽마다 우유를 들고 대문을 나설 때 밤하늘에서 별이 후두둑 쏟아졌다. 이 모든 기억과 경험이 시를 쓰는 거름이 됐다. 가장 큰 자양분이 됐다.”

중3 겨울방학 때 오빠가 주문한 ‘세계문학전집’은 그의 삶을 바꾸었다. “아동문학만 읽다가 비로소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게 됐다. 그때 알았다. 문학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걸 말이다.” 고2 때는 시를 써 신춘문예에도 도전했다. 백일장에 나갈 때마다 만나는 마산지역 또래들과 함께 동인도 꾸렸다. “돌아보니 학교에서 배운 건 일종의 테크닉이더라. 시를 쓰기 위해 정말 필요한 건 어릴 적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면서 자연 속에서 다 배웠더라.”

강 시인은 천주교인이다. 중앙시조대상 수상작은 제목이 ‘미황사’다. 미황사의 무엇이 그에게 시로 흘러들었을까. “지금껏 미황사는 세 차례 갔다. 미황사는 단청이 없다. 그래서 소탈하고 수더분하다. 무언가 너그럽다. 대웅보전에 앉아 있는 삼존불이 내게는 오촌 당숙 아저씨들 같더라. 사람들 없는 밤에 양반다리도 풀고, 밖으로 나와서 달빛도 쬐고, 주춧돌에 박힌 게와 거북이 기어 나오고, 멀리 밤 파도까지 달려오는 야단법석이 미황사에서 펼쳐질 것만 같더라.”

미황사

단청을 다 털어낸 팔작집 대웅보전
달까지 끌어내려 절집 온통 새하얗다
어쩌나, 오늘밤 내내 눈이 부실 달마산

삐거덕 어간문 열며 세 부처님 나오시겠다
무릎은 좀 어떠신지요 서로 살펴도 보고
나란히 돌계단에 앉아 달빛 나눠 쬐시겠다

주춧돌 속 게와 거북 자하루 밑 소 그림자
다 닳은 발 움직여 그 옆에들 와 앉겠다
저 아래 파도도 달려와 야단법석 나겠다

◆강현덕

1994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199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한국시조 작품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수상. 시집  『한림정 역에서 잠이 들다』  『먼저라는 말』 등, ‘역류’ 동인.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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