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포커스] 유엔 등 한국의 강제개종 실태 규탄…우리 정부와 종교계·미디어는 침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지난해 1월 강제개종으로 인한 두 번째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사건 발생 후 1년이 넘도록 정부와 종교, 미디어가 일관되게 침묵하면서 결국 국제사회의 비판을 초래했다.

지난해 1월 두 번째 사망자 발생

강제개종으로 인한 사망 소식이 알려지면서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는 ‘강제개종처벌법’ 제정을 요청하는 글이 올라왔고, 5일 만에 13만5000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하지만 해당 청원은 돌연 삭제됐다. 글에 개인 신상이 포함됐다는 게 이유였다.

서울 광화문 등 국내 여러 도시에서 강제개종을 규탄하고 진상조사와 처벌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지만, 정부와 종교계는 침묵을 지켰다. 미디어 역시 광화문에서 12만여 명이 모인 대규모 집회를 못 본 척했다. 강제개종피해인권연대는 청와대에 강제개종 실태조사 및 조처를 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주무 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특정 종교문제에 관여하지 못한다’는 답변을 보냈다.

기독교계는 “강제개종 사실이 없다”고 사실을 부인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및 한국기독교이단상담협회 등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사이 강제개종 피해자는 지난해 131명, 올해 90여 명이 발생했다.

국내 정부·종교계·미디어가 강제개종 문제에 침묵하자 결국 국제사회가 이를 확인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난 7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인사회 41차 회의에서 유럽 ‘양심의 자유 협의회(CAP-LC)’는 두 명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수천 명에게 납치·감금·폭행 등 피해를 준 한국 내 강제개종 실태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대한민국 당국이 강제개종자들에 대해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강제개종에 대해 조사를 하고 관련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강제개종 규탄집회가 언급된 ‘2018년 미 국무부 종교자유 보고서’.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강제개종 규탄집회가 언급된 ‘2018년 미 국무부 종교자유 보고서’.

또한 지난 7월 발행된 ‘2018년 미 국무부 종교자유보고서’에는 구지인씨 사망사건 이후 광화문에서 열린 대규모 강제개종 규탄집회가 공식 언급됐다.

같은 달 미 국무부 주관 ‘종교의 자유 증진을 위한 장관급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다뤄졌다. 국제종교자유원탁회의(International Religious Freedom Roundtables)에서 사례를 발표한 마시모 인트로비녜 신종교연구센터 대표는 “신학적 논쟁은 종교 자유의 일부지만 신도를 살인하고 납치·감금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라며 15개 국제 NGO 단체가 서명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발표했다.

지난 7월 18일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국제종교자유원탁회의. 이 회의에서 15개 국제 NGO 단체가 서명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이 발표됐다.

지난 7월 18일 미국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국제종교자유원탁회의. 이 회의에서 15개 국제 NGO 단체가 서명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이 발표됐다.

특히 윌리 포트레 국경없는인권 대표는 “현재 한국에서 강제개종자들이 벌이는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는, 인권의 원칙과 양립 불가한 범죄행위”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인권 실태를 우려하는 국제적 목소리는 계속 높아질 것이고, 한국 당국 역시 이를 무시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라고 관측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