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제로 잡셰어링? 대기업 취업 증가세 되레 둔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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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 제도(주 52시간제) 시행 이후 대기업(종업원 300인 이상)의 취업자 증가세가 오히려 둔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이른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추가 고용을 기대하고 대기업부터 주 52시간제를 도입한 바 있다.

불경기라 고용 대신 업무 효율화 #취업자 증가율 4년 새 6.2→1.2% #내년 도입 중소기업 미리 허리띠 #기계로 대체하거나 탈한국 조짐

고용 둔화 원인이 주 52시간제 때문만은 아니다. 하지만 경기 불황을 맞아 제조업 가동률이 떨어진 상황에서 근무시간을 줄여도 눈에 띄는 일자리 증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 진단이다.

10일 중앙일보가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 통계를 분석한 결과,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전년동기 대비 취업자 증감률은 2015년 10월 6.2%에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10월 수치만 비교하면 올해가 1.2%로 가장 낮다. 월별 증감률을 제도를 도입한 지난해 7월(2.6%)과 비교하면 올해 10월이 1.4%포인트 낮다.

주 52시간제 시행 후 대기업 종사자 증감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 52시간제 시행 후 대기업 종사자 증감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경영 환경이 나빠진 대기업들은 줄어든 근로시간만큼 고용을 늘리기보다 서면보고 축소, 집중 근무 등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는 분석이다.

내년으로 제도 도입을 미룬 종업원 300인 이하 중소기업 역시 취업자 증감률이 하락 추세다. 2015년 10월 5.1%에 달한 취업자 증감률은 올해 10월 2%로 떨어졌다.

문제는 내년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근로시간 단축으로 중소기업에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3조3000억원으로 추산했다. 불경기에 자금 사정이 취약한 중소기업 입장에서 관련 비용은 ‘엎친 데 덮친’ 부담이 될 수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대기업과 마찬가지 이유로 인건비 증가를 우려해 종업원 고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을 분위기”라고 전했다.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종사자 증감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 종사자 증감률.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당초 정부는 장시간 근로를 규제하면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일자리가 늘 것으로 예상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난해 3월 보고서에서 초과 근로 감소로 신규 일자리는 12만5000~16만명가량이 늘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근로시간은 줄었지만, 임금은 그대로 거나 더 증가하면서 기업의 단위 시간당 인건비 부담은 더욱 늘어났다.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9월 상용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398만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늘었다. 임시·일용근로자 임금도 7.9% 증가한 153만원을 기록했다.

정조원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창출팀장은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의 경우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근무시간이 줄어도 임금이 줄지 않았다”며 “제조업 부진 상황에서 단위당 인건비 부담이 추가 고용을 막는 상황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한경연은 지난해 7월 보고서에서 기업 생산성 향상이 없다면 주 52시간제 도입으로 총 10만2900명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관측하기도 했다.

정부는 내년부터 중소기업에 적용하는 주 52시간제 계도 기간을 최장 1년 6개월 두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노동계는 예정대로 시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를 중소기업에도 도입하면, 일자리 감소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간당 노동 비용이 커지면, 노동을 기계로 대체하는 속도도 빨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최근 기업의 ‘코리안 엑소더스(탈한국 현상)’가 심화한 배경에는 주 52시간제도 한몫하고 있다”며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들은 초과근무시간을 확대하고 있는 베트남 등으로 공장을 이전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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