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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쓰러져 심근경색, 16년뒤엔 신장병까지…법원 "업무상재해"

중앙일보

입력

일하는 도중 갑자기 쓰러져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았다면 비교적 업무상 재해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그런데 심근경색 진단 이후 16년이 지나 ‘말기신장병’ 진단을 받았다면 이 신장병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경찰공무원으로 일하던 A씨는 2000년 근무 중 갑작스럽게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응급실에 실려 간 그는 ‘급성 심근경색’ 진단을 받고 혈관 수술을 받았다. 이후 A씨는 심근경색과 고혈압에 대해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요양신청을 한다. 공단은 심근경색에 대해서만 신청을 받아들였다.

A씨는 이후에도 계속 경찰로 일하다 2016년 초 ‘말기신장병’ 진단을 받았다. 약 2년 뒤인 2017년 말 그는 정년퇴직했고 이듬해 말기신장병으로 인한 장애가 발생했다며 공단에 장해급여를 청구했다.

공무상 요양은 공무원이 공무 수행과 관련해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으로 치료받을 때 드는 돈을 받는 것을 말한다. 장해급여는 공무상 질병이나 부상으로 장애 상태가 돼 퇴직하거나 퇴직 이후 그 질병이나 부상으로 장애 상태가 된 경우 받는 연금이나 보상금이다.

A씨는 2000년에 발병한 심장병이 2016년 진단받은 신장병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심장 기능이 떨어지니 장기간 치료를 받으면서 약물을 복용했고, 신장 기능 저하로 이어졌다는 취지다. 경찰 업무 특성상 계속되는 과로와 스트레스도 신장 기능 악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단측은 심장병과 신장병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공단은 “신장병은 A씨 체질상 문제거나 유전적 요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A씨는 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법원, "심장병으로 신장병 악화 가능성 인정"

심근경색 진단 이후 얻은 신장병...업무상 재해일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심근경색 진단 이후 얻은 신장병...업무상 재해일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으려면 업무와 재해 발생 사이 인과관계를 인정받아야 한다. 이때 재해가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기존 질병이더라도 업무와 관련해 발생한 사고로 더욱 악화했다면 법원은 업무와 재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법원은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었다. 법원 진료기록감정의는 “심장 기능과 신장 기능은 서로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의학적 견해”라는 소견을 보내왔다. 의료진은 A씨 주장처럼 2000년 발병한 심장병 영향으로 서서히 신장 기능이 떨어져 2008년 만성신부전 3단계 정도로 진행되는 모습이 “심장 기능에 이상 있는 사람의 신장병 진행 속도 자연 경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교대근무, 스트레스 취약" 판단

법원은 A씨 근무 상황에 대한 판단도 덧붙였다. 법원은 “A씨는 2015년부터 말기신장병 진단 때까지 CCTV 관제센터에서 일하며 상당 기간 3교대 근무를 했다”며 “교대근무를 지속하면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상당 부분 감소한다”고 판단했다. 비교적 규칙적인 주간근무에 비해 야간 수면을 통한 피로 해소가 어렵다는 것이 이유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단독 이길범 판사는 “심근경색으로 신장병이 생겼거나 신장병이 자연적인 진행 속도 이상으로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고 9일 밝혔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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