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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원대 분재 사고, 벽틈에 5만원권···탈세범들 '기막힌 수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세청은 체납자가 은닉한 수억원대 분재 377점을 찾아내 압류했다. [국세청]

국세청은 체납자가 은닉한 수억원대 분재 377점을 찾아내 압류했다. [국세청]

수억원대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A씨는 최근 본인 명의 부동산을 모두 팔았다. 이후 분재 수백점을 사들여 비닐하우스 4개 동에 키우면서 재산을 숨겼다. 세금 낼 형편이 된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다. 체납자의 직업이 '분재 수집가'란 사실을 포착한 국세청은 그가 어디에 분재를 숨겼는지를 탐문해 은닉 장소를 포착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분재 전문가를 동원해 가격을 감정한 결과, 압류한 분재 377점의 가치는 수억원대였다"고 밝혔다.

위장전입한 체납자 거주지에서 압류한 현금 5억5000만원. [국세청]

위장전입한 체납자 거주지에서 압류한 현금 5억5000만원. [국세청]

체납자 B씨는 아파트 보일러실과 벽 사이 틈에 5만원권 현금 다발을 숨겨 놓기도 했다.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으려고 부동산을 판 돈을 현금으로 인출, 쇼핑백에 넣어 보일러실에 숨겨 둔 것이다. 장남 소유 아파트에 거주하던 B씨는 잠복하던 국세청 직원에 덜미가 잡혔다. B씨는 주차장에 있던 외제차 트렁크에도 현금다발을 숨겼다. 국세청이 그로부터 징수한 돈은 총 9400만원이었다.

국세청, 고액·상습 체납자 6838명 명단 공개  

국세청은 4일 1년이 넘게 납부하지 않은 세금이 2억원 이상인 고액·상습 체납자 6838명에 대한 명단(개인 4739명, 법인 2099개)을 홈페이지와 세무서 게시판에 새롭게 공개했다.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은 액수는 총 5조4073억원으로 최고 체납액은 개인이 1632억원(홍영철, 46세), 법인 450억원(코레드하우징, 건설업)이었다. 국세청은 지난 3월부터 체납자 명단 공개 예정자를 대상으로 6개월 이상 세금 납부를 독려했지만, 끝내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틴 사람이 6838명에 달한 것이다.

'황제노역' 허재호, '허준' 작가 최완규도 포함 

이들 중에선 유명인도 상당수 있었다. 하루 5억원씩 벌금을 탕감받은 구치소 '황제 노역'으로 공분을 산 허재호(77) 전 대주그룹 회장은 56억원을 체납해 명단에 올랐다. '허준', '아이리스' 등의 극본을 쓴 최완규(55) 작가(13억9400만원),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김한식(77) 전 대표 등도 8억7500만원을 체납해 명단에 포함됐다. 20대 창업가로 운동화 업계에서 유명세를 탔던 황효진(31) 전 스베누 대표도 부가가치세 등 4억7600만원을 체납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은 올해 10월까지 민사소송 367건을 제기하고 267명을 형사고발 하는 등 법적 대응을 강화했다. 민사소송은 전년동기 대비 17.6%, 형사고발은 29.6% 늘었다. 이를 통해 징수하거나 채권을 확보한 액수는 총 1조769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82억원 증가했다.

"내년부터 체납자 친인척 금융거래도 추적할 것" 

국세청은 내년부터 일선 세무서에 체납 업무를 전담하는 체납징세과를 신설, 징수 역량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 부서는 압류·공매 등 일반적인 체납관리는 물론, 지방청에서 담당하는 추적 조사 업무까지 하게 된다. 또 지난해 10월 말 금융실명법 개정안 통과에 따라 체납액 5000만원 이상의 재산을 은닉한 혐의가 인정되는 체납자에 대해서는 친인척의 금융거래도 추적할 계획이다.

강민수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은 "세금 납부에 어려움을 겪는 영세 사업자는 징수 유예 등 세정 지원을 하겠지만, 악의적인 체납자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은닉 재산을 추적할 것"이라며 "은닉 재산 제보자에게는 최대 20억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 있어 적극적인 신고를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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