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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의 V토크] 한국전력의 굴러온 복덩이, 장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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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에서 기회를 얻으며 활약을 펼치고 있는 장준호(오른쪽). [사진 한국배구연맹]

한국전력에서 기회를 얻으며 활약을 펼치고 있는 장준호(오른쪽). [사진 한국배구연맹]

"정말 우리팀 분석을 잘 했네요." (석진욱 OK저축은행 감독)
"너무 만족하고, 고마운 선수입니다."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
29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V리그 남자부 OK저축은행-한국전력전이 끝난 뒤 두 사령탑은 같은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웃었다. 지난 22일 트레이드로 OK저축은행을 떠나 한국전력 유니폼을 입은 미들블로커 장준호(29) 이야기였다.

트레이드 이적 후 2경기 연속 선발 #팀도 연패 끊고 2연승으로 상승세

성균관대 출신 장준호는 2013-14시즌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2순위(전체 9순위)로 러시앤캐시(현 OK저축은행)에 지명된 창단 멤버다. 남들보다 늦게 배구를 시작한 탓에 유급을 했던 장준호는 심경섭(28)·송명근(26)·송희채(27·삼성화재)·이민규(27) 등 입단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하지만 장준호의 역할은 언제나 '백업'이었다. 미들블로커 선수들이 많은 팀 사정상 기회를 잡기 쉽지 않았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18-19시즌엔 데뷔 이후 가장 많은 20경기, 47세트에 나섰지만 총득점은 54점, 블로킹은 25개에 그쳤다.

올시즌 장준호의 입지는 더 좁아졌다. 주전인 박원빈, 그리고 한상길에 이어 3년차 손주형, 2년차 전진선의 팀내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신인인 정성환을 제외하면 사실상 팀내 미들블로커 중 '넘버 5'였다. 그런 와중에 OK저축은행과 한국전력의 트레이드가 진행됐고, OK저축은행은 최홍석을 받으면서 2000년생 신인 이승준과 장준호를 내줬다. 당연히 서운한 마음이 먼저 들었다. 장준호는 "팀 창단 때부터 동료들과 오래 함께 해왔다. 정도 정말 많이 들었고, 우승도 한 번 더 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팀을 떠나게 돼 아쉬운 마음이 들더라"고 털어놨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장준호에게 '기회'였다. 한국전력은 센터가 약점이었기 때문이다. 장병철 한국전력 감독은 26일 수원 KB손해보험전을 앞두고 "준호가 우리 팀 센터 중 가장 공격력이 좋다. 오늘부터 선발로 나간다"고 했다. 이 경기에서 장준호는 블로킹 3개 포함 4점을 올렸다. 100점을 주긴 어려운 성적. 하지만 팀은 3-1로 이기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장 감독은 "만족한다. 더 좋아질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주전으로 내보내려고 한다"고 했다. 장준호는 “정말 부담이 많이 됐다. OK저축은행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다”고 했다.

OK저축은행에서 뛰던 시절 장준호. [사진 OK저축은행]

OK저축은행에서 뛰던 시절 장준호. [사진 OK저축은행]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 장 감독은 장준호에게 힘을 실었다. 한국전력 관계자는 "장준호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연봉도 올려줬다"고 귀띔했다. 그리고 29일, 친정팀 OK저축은행과 경기에서 장준호는 펄펄 날았다. 블로킹 6개를 잡아내며 7득점을 올렸다. 6블로킹은 프로 데뷔 이후 단일 경기 최다다. 한국전력은 3-2 승리를 거두며 시즌 첫 2연승을 달렸다. 2라운드 승률은 5할(3승 3패)이다.

이날 경기을 앞두고 장준호는 전력분석 미팅에서 자신이 아는 OK저축은행에 대한 것들을 팀원들에게 낱낱이 알려줬다. 이를 전해들은 석진욱 감독은 "준호가 정말 분석을 잘 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장준호는 "사실 OK에 있을 때도 (이)민규 토스는 따라가기 힘들었다. 그래도 민규를 오래 봤기 때문에 미팅 때 상대 공격 코스와 블로킹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리시브가 잘 됐을 땐 미리 예측을 하고, 흔들렸을 때는 자리를 잡자고 했다. 가빈이 잘 지켜줘서 편하게 따라다녔다. 동료들이 많이 도와준 거 같다"고 설명했다.

친정팀과 첫 대결에 대해선 "부담이 되긴 했다. 그래도 '열심히만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특히 장준호는 득점이 날 때마다 힘있는 액션으로 선수단 분위기를 이끈다. 장준호는 "내가 잘하는 선수는 아니지만, 팀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 어린 선수들이 많다 보니 흔들릴 때가 있는데, 그 기복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가라앉지 않으려면 파이팅을 내서 활기차게 해야 한다"며 "훈련할 때도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있다"며 웃었다.

장준호를 데려온 장병철 감독도 대만족이다. 장 감독은 "준호가 온 뒤 시너지 효과가 생각보다 더 크다. 취약 포지션인 센터에서 잘해주고, 파이팅도 많이 내면서 리더 역할도 잘 해주는 거 같다. 흡족하고, 고마운 선수"라고 말했다. 장준호는 "사실 그동안 OK저축은행에서는 많이 뛰지 못했다. 트레이드 후 감독님께서 기회를 많이 주니까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전력의 핵심이었던 전광인(현대캐피탈 이적), 서재덕(사회복무요원 입대)이 빠져나간 뒤 전력이 약화됐다. 신임 장병철 감독은 무리하기보다는 구본승, 금태용, 이호건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조금씩 팀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신생팀에 있다가 온 장준호는 현재의 한국전력에서 미래를 내다봤다.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 팀에 왔는데 즐기면서 하다보니 경기가 잘 풀린다. 이기면서 '우리가 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OK저축은행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선수들이 다 어렸다. 힘든 과정을 겪었지만, 열심히 하다보니 우승도 할 수 있었다. 우리 팀도 세대 교체가 빨리 이뤄졌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굴러온 복덩이 장준호가 바로 변화의 중심이다.

안산=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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