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변수…선거제·공수처법 ‘시계 제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63호 01면

자유한국당이 29일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비쟁점 법안 199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정국이 다시 한 번 얼어붙었다. 필리버스터는 특정 안건에 대해 장시간 발언하면서 표결을 지연시키거나 막는 합법적 표결 저지 수단이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을 놓고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8일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적이 있다.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꺼내들자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1시간여 회동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한국당 기습에 여당 본회의 무산 시켜 #내달 10일까지 국회 올스톱 예고 #민식이법 등 199개 법안 상정 못해 #파행 책임 놓고 여야 서로 비난

민주당은 한국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해찬 대표는 “30년 정치를 했는데 이런 꼴은 처음 본다”며 “본회의에서 처리할 199개 안건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하겠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된단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에 허를 찔린 민주당은 의원총회를 열고 이날 본회의를 무산시키기로 했다. 이에 한국당은 본회의 개의를 독촉했지만 민주당도, 문 의장도 개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본회의가 열리면 법안이 상정되는데, 한국당이 미리 신청한 필리버스터에 돌입할 경우 법안마다 최소 24시간 동안 무제한 토론을 할 수 있다. 한국당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하려고 했던 199건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론상 본회의가 열리면 199일 동안 필리버스터를 통해 표결을 막을 수 있는 셈이다. 단 회기 내인 경우다. 정기국회는 180일, 임시국회는 최장 30일이다.

변수는 자동으로 상정되는 내년도 예산안 때문에 다음달 2일 본회의가 잡혀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날도 한국당이 필리버스터에 나서면 필리버스터 대상이 아닌 예산안과 예산안 부수법안을 제외한 다른 법안은 상정만 하고 표결은 못한 채 정기국회(다음달 10일까지)를 마칠 수도 있다. 이 경우 여권이 공들여온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검·경 수사권 조정안 등 패스트트랙에 올린 주요 법안도 표결 기회를 잃게 된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로 표결을 막았던 법안은 다음 회기가 시작되면 자동으로 표결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다음달 2일 예산안 때문에 본회의가 열렸는데 한국당에서 특정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진행할 경우 정기국회 종료 후 임시국회를 다시 열어 표결 처리할 수 있다.

이날 본회의가 파행되자 여야는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들 처리까지 막혀버린 것을 놓고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이인영 원내대표는 “유치원 3법과 민식이법이 어떻게 필리버스터 대상이 될 수 있느냐”며  “한국당은 오늘 스스로 무덤을 팠다”고 비판했다. 이날 법안이 통과되는 줄 알고 국회를 찾았던 김민식군 부모도 한국당 원내대표실 밖에서 “민식이가 협상 조건이냐”며 말했다.

이에 대해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안건 중 민식이법은 해당되지 않는다”며 “본회의를 열지 않고 있는 국회의장과 민주당이 민식이법 처리를 막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본회의를 열면 민식이법부터 우선 처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민생법안이 처리되지 않은 데 대해 여야 모두 부담을 느끼고 있는 만큼 다음달 2일 예산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가 열릴 때 일부 법안들은 처리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당 원내 지도부도 “민식이법은 빨리 처리해야 하며 이를 막을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