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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성사보다 불발이 목표?…청와대-한국당 회담 무산 핑퐁게임

중앙일보

입력

성사보다 불발이 목표 같은 회동 제안이 오고 갔다. 자유한국당과 청와대가 지난 이틀 간 벌인 ‘일 대 일 회담’ 무산 공방 얘기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앞에서 지지자들이 덮어준 담요를 덮고 단식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0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앞에서 지지자들이 덮어준 담요를 덮고 단식을 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먼저 회담 제안과 응답 방식이 묘했다. 양쪽 모두 직접 메시지를 건네기 보다 우회로를 택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먼저 18일 오전 8시 30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현재의 위기 상황 극복을 논의하기 위한 대통령과의 회담을 제안한다”며 ‘일 대 일 회담’을 제안했다. 사전 교감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자 6시간 30분 뒤인 오후 3시, 청와대는 언론을 통해 공식 답변을 내놨다. “사전에도, 사후에도 공식 제안을 받은 바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엔 제안을 했는지 여부를 두고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김도읍 한국당 대표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청와대 입장이 나오기 3시간 전인) 정오쯤 청와대 정무라인에서 연락을 받았다. 일정을 확인한 뒤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했는데, 긍정적 검토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사전‧사후 제안이 없었다”는 청와대 입장을 정면 반박한 셈이다.

공방은 3일 간 이어졌다. 김 의원은 19일 오전 취재진과 만나 “청와대에서 제안이 없다고 한 건 사실과 다르다”며 “결론적으로 전날(18일) 오후 5시쯤 청와대가 회담을 거부했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다는 이유”라고 했다. 이에 다시 청와대 측에선 언론을 통해 ‘절차가 부족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취재진에게 직접 청와대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소개하며 “실무 협상을 진지하게 안 했다는 취지인데 좀 화가 난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말이 되는가”라고 재반박했다.

논란이 번지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20일 “김광진 정무비서관이 김 의원과 대화한 거다. 전혀 보고되지 않은 이야기”라며 “저도 언론보고 알았다”고 해명했다. 강 수석은 청와대 앞에서 단식농성에 돌입한 황 대표를 찾아가 만난 뒤 취재진에게 “김 비서관이 ‘23일 토요일은 시간 있다’는 취지로 했는데, 대통령이 그날부터 국빈 면담이 계속 있다”고 했다. 이어 “늘상 5당(대표 회동)이냐 일 대 일이냐를 갖고 언쟁을 하는데, 이미 국정상설협의체도 있으니 그런 걸 협의하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일 대 일 회담’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풀이됐다.

3일 간 벌어진 공방을 두고 청와대와 한국당 양측이 ‘진짜 만날 용의가 있는 거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먼저 “물리적으로 시간이 없다”는 청와대 입장에는 야당과의 대화 의지가 부족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야당 인사는 “지금처럼 청와대와 야당이 대화를 안 하는 정국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역대 정부 중 박근혜 정부를 제외한 대부분 정부가 제1야당 대표와 일 대 일 회담을 가졌다. 의견 차 극복은 어려웠지만, 정국 현안에 관해 논하는 만남만으로도 의미는 적지 않았다. 더욱이 대통령이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국회의 역할을 주문한 만큼 설득과 협력 대상인 야당과의 대화에 적극 나설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한국당에도 문제는 있다. 지나치게 형식에 집착했다. 황 대표는 지난 5월에도 ‘일 대 일 회담’ 형식을 고집하다가 결국 회담 자체가 무산됐다. 일각에선 “황 대표가 대화의 ‘격(格)’에 지나치게 무게를 둔 결과”라는 비판이 나왔다. 청와대와 여야 당 대표가 만날 수 있는 ‘여‧야‧정 상설협의체’가 있는 만큼 긴급히 다뤄야 할 의제가 있다면 일 대 일이든 다(多) 대 일이든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게 우선이란 논리에서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20일 “받아줄리 없는 여야 영수회담(일 대 일 회담)을 뜬금없이 제안했다”고 황 대표를 비판했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데다,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결렬되며 외교안보 현안이 산적해 있다. 선거법‧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될 시점도 머지않았다. 청와대와 제1야당 대표가 만나 다룰 의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3일 간 벌어진 ‘속 좁은’ 공방에는 대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양쪽 모두 말이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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