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과 「역사의 쓰레기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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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영국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는 무엇인가』 라는 책에서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 든가,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는 상식적 명제를 다같이 비판적으로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두 명제가 서로 보완적으로 역사의 전기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즉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크고 작은 것으로 역사의 진로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바뀔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지만 이 전설적 여인의 미모와 시대상황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 하나의 전기가 일어날 수 있는 개연성이 생긴다고 보았던 것이다.
E H 카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한국은 분명 「영웅」 의 등장을 고대할만한 시대상황을 여러 번 맞았으면서 정작 「영웅」 은 맞지 못했다. 그런 상황은 해방 직후에 있었고, 4·19때 있었고, 10·26때 있었고, 또 가까이는 6공이 탄생한 88년 초에 있었다. 이 거듭된 시대적 전기에 우리 주변의 환경과 국내의 정세는 큰 정치의 비전과 능력을 지닌 지도자의 등장을 절실하게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우리 역사를 이끌어온 대부분의 지도자들은 그와 같은 시대적 전기에 부응하지도, 이를 주도하지도 못했다.
이승만· 장면· 박정희· 전두환 등 우리 현대사의 주역들을 거명해 보면 아마 대개는 이런 단정에 수긍할 것이다.
이들 중에서 앞으로 한국의 진운이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역사적 평가가 달라질 인물이 하나 둘 있을 가능성은 있다.
얼핏 머리를 스치는 인물로는 박정희씨가 있다. 그는 이렇다할 자원하나 없는 이 땅에 산업혁명을 일으켜 우리도 배 안 곯고 헐벗지 않는 나라로 일어설 수 있다는 비전과 의지하나만으로 매진했다. 그 결과 우리는 「보릿고개」 라는 처참한 가난의 굴레를 우선 벗어 던지고 드디어 세계 10위의 교역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의 사회가 건전하게 커 나갈 수 있게 해주는 제도적 받침대들을 거의 깡그리 허물어 버렸다.
국회가 행정부에 대한 견제구실은 커녕 시녀화하고 사법기관이 정권안보의 수단으로 오용 되었으며, 언론이 언론다운 역할을 못하게 만들었다. 이런 제도적 장치들이 그의 독선적 집념의 도구로 전락되면서 제도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깊어만 갔다.
그가 만약 비명에 사라져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자신이 유린한 제도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현대산업화사회에 걸맞은 자율적 민주제도의 부활을 위해 노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사란 클레오파트라의 코처럼 가정을 허용치 않는다. 그가 일으켜 세운 것은 그것대로, 그가 파괴한 것은 그것대로 우리의 앞날을 조건 지우는 바탕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볼 때 가장 안타까운 것은 10·26사건 이후 우리 지도자들이 보인「지도력」 이다. 이상론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때의 전기야말로 경제적 성장에 버금가는 사회· 정치· 문화적 탈바꿈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우여곡절이야 어쨌건 우리 정치인들은 그 기회를 놓쳤다. 물끓듯하는 시대의 요구를 눈앞에 보면서 우리의 민주투사들은 도토리 키 재기의 경쟁 속에서 폭발적 국민의 개혁열망을 소모하고 실망시켰다.
그런 속에서 등장한 전두환씨는 전혀 시대의 흐름에 눈이먼 반역사적 인물이었다.
박씨가 죽게된 배경이나 그 직후에 자기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민의의 분출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말로만 「개혁 주도세력」을 외치면서 그 반대방향으로 돌진했던 것이다.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만 박씨와 다른 스타일을 시도했을 뿐 본질에 있어서는 박씨가 걸어온 발자취를 오히려 한술 더 떠 더 강력하게 밀어 붙였던 것이다.
그 스스로가 원인을 제공해 생긴「자생적 공산주의」 가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게된 까닭은 바로 개혁을 갈망하는 국민 여망과 시대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 그의 소인적 전인모방에 있었던 것이다.
그처럼 역사적 전기를 잘못 거스른 결과 5공 비리가 생겼고 오늘 우리 사회가 겪고있는 갈등과 모순과 불신이 쌓였던 것이다.
우리는 6공이 탄생하면서 노태우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는 누워서 떡먹기라는 속설이 널리 유포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씨가 워낙 국민들의 여망과는 정반대로 통치해 왔기 때문에 그 반대로만 하면 국민들의 사랑과 지지는 저절로 우러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6공 2년을 겪으면서 우리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천진난만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가방을 손수 들고, 원탁으로 회의 테이블을 바꾸고, 「보통사람」들과 당선 축배를 들 때 우리는 얼마나 신선한 느낌을 가졌던가.
그러나 마키아벨리가 오래 전에 이미 지적했듯이 지도자란 그런 피상적 인기전술만으로는 국민의 존경과 공감을 받을 수 없다.
「공안정국」 을 계기로 그는 다시 수구적 성향의 행보로 돌아서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는데 이 또한 위험한 곡예가 아닐 수 없다.
확고한 비전 없이 여론의 흐름에 따라 극에서 극으로 움직이는 지도자로서는 오늘의 난국을 바른 길로 수습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는 지금도 시대흐름을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고, 앞장서서 해묵은 구각을 벗어 던질 지도자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 기다림에는 시간의 여유가 없다. 안팎으로부터 변화와 바람이 거세게 불고있기 때문이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시대정신으로 포착한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그런 바람을 그보다 앞서 불러일으킨 폴란드의 바웬사를 우리 정치인들은 남의 일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등장을 가능케 한 시대의 요구가 우리 나라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성숙되어 있음을 깨달아야된다.
오늘날 지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왜 자기들이 실패했고, 왜 시대 흐름을 올바로 주도하지 못했는지 반성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난세를 극복해 나가는지에 대한 우국적 자세로 눈앞의 문제에 임해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그들은 레닌이 경고했듯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사실을 발등에 떨어진 불로 느껴야할 때다. <논설주간> 장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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