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대 "면학 분위기 위해 대자보 철거"…학생 "공론장 훼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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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야외게시판에 홍콩 민주화 시위 찬성 대자보와 반대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 대자보들은 19일 학교 측의 조치로 철거됐다. [연합뉴스]

1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야외게시판에 홍콩 민주화 시위 찬성 대자보와 반대 대자보가 붙어 있다. 이 대자보들은 19일 학교 측의 조치로 철거됐다. [연합뉴스]

한국외대가 외부단체 이름으로 게시된 홍콩 시위와 관련한 대자보를 모두 철거했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한국 학생과 이에 반발하는 중국인 유학생 간의 갈등이 이어지자 단행한 조치다.

학교 측은 19일 '홍콩시위 대자보 부착에 대한 학교 안내문'을 붙이고 "표현의 자유와 개개인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학교는 우선적으로 학내 구성원들의 안전을 지키고 면학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며 "무책임한 의사표현으로 인해 학내가 혼란에 빠지고 질서가 훼손된다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상황들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외부단체의 홍콩 시위 관련 대자보 교내 부착이나 관련 활동을 제한하겠다"며 "학교의 허가 없이 활동하여 발생하는 모든 상황의 책임은 해당 단체에 있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 대자보도 철거했다. 해당 모임은 대학가에 '레넌벽'을 설치하고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붙여왔다.

학생들은 학교 측의 조치가 재학생들의 대자보 활동을 제한한다며 반발한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에는 외대 학생들도 있고 대자보도 외대 학생이 붙였음에도 철거해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것이다.

자신을 '외부단체가 아닌 학교 구성원'이라 밝힌 한 학생은 하버마스의 '공론장'을 언급하며 학교의 조치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다시 붙였다.

그는 "학생들은 (대자보를 통해) 한국인과 중국인, 홍콩인이라는 민족적 정체성과 지위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출해왔다"며 "이는 한국인들에겐 한국 민주주의의 국제적 역할과 책임에 대해 고심하는 계기가 됐고 중국 동문들에게는 자국에서 직면해본 적 없는 자유로운 의견 교환과 대립을 경험하는 기회였다"고 평가했다.

또 학교 측의 '외부단체의 대자보 제한' 조치가 사실상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를 겨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는 홍콩 시위 지지를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던 노동자연대를 사실상 겨냥, 외부 단체로 규정하고 '무분별하고 자극적인 대자보와 유인물 부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외부 단체의 대자보 부착을 제한했다"며 "그러나 대자보는 노동자 연대 소속 외대 학생이 부탁한 것이고 추운 날씨에도 정문에서 홍콩 지지를 호소했던 학생도 외대 구성원"이라고 지적했다.

'면학 분위기 유지'를 위해 조치를 취했다는 학교 측의 설명에 대해선 자격없는 명분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학교는 얼마 전까지 본관을 제외한 어느 곳에도 장애인 학생을 위한 시설을 마련해주지 않았고 외부인의 학교 건물 출입 및 고성방가도 제지하지 않고 있다",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해 학생들이 시험기간에 학교 앞 카페와 스터디를 전전한다"고 지적했다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야외게시판에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관련 대자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학교 야외게시판에 홍콩 민주화 시위 지지 관련 대자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 14일 한국외대에서는 총학생회 게시판에 붙어 있던 '홍콩 항쟁에 지지를!'이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했다. 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에 대해 '정신병', '기생충' 등 표현을 쓰며 비난하는 게시물이 붙었다가 철거되기도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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