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규제는 이데올로기 성역 규제 풀어도 시행령서 되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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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를 거의 마친 규제개혁기획단 민간위원들의 얼굴에서 시원섭섭함이 묻어난다. 왼쪽부터 김신(39.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 나창엽(51.대한항공 화물사업본부 부장), 최보선(40.현대중공업 기획실 차장) 위원. 김상선 기자

2004년 9월 출범한 1기 규제개혁기획단의 활동 시한이 다음달로 다가왔다. 규제개혁단은 처음 만들 때 올해 8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경제단체들의 요구에 따라 기획단의 활동기간이 2년 더 연장됐다. 민간기업에서 파견 나와 출범 이후 활동한 전문위원들은 다음달 임기를 마치면 소속 기업으로 복귀한다. 이들은 2년간의 활동 결과에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다. "개별 부처에 맡겨서는 도저히 해결되지 않을 규제를 상당히 개선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도 컸다고 한다. 공무원들의 보수적인 자세에 어려움을 겪고, '이데올로기화'된 일부 규제의 벽 앞에서는 좌절하기도 했다. 막바지 정리작업에 바쁜 기획단 민간위원 김신(39.삼성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나창엽(51.대한항공 화물사업본부 부장).최보선(40.현대중공업 기획실 차장) 전문위원에게 '공무원 체험기'를 들어봤다.

사회=국민은 공무원이 일하는 방식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직접 공조직에 들어와 일해 보니 어떻던가.

최보선=공무원들은 어떤 규정이든 민간 쪽에 유리하게 해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더라. 규정이 모호하면 무조건 보수적으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대기오염 배출시설 신고를 할 때 오염방지시설도 함께 신고한다. 그런데 방지시설의 집진설비도 다시 오염배출시설에 포함한다. 이중 계산을 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니 바꾸자고 아무리 설득해도 공무원들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유는 하나다. '규정에 없다'는 거였다.

나창엽=규제는 사람들이 현실을 악용하는 것을 막으려고 만든다. 현실을 악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5% 정도? 나머지 95%는 규제로 인한 애꿎은 피해자가 되는 거다. 그래서 이왕 규제를 하려면 좀 복잡하더라도 다양한 경우를 가정해 자세히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공무원들은 그걸 싫어한다. 법이 누더기가 된다고 주장한다. 상황에 따라 규제를 하면 귀찮고 복잡하니까 단순하게 만들어 놓고 그걸 넘어서면 무조건 안 된다는 식이다. 초기에는 10개의 과제를 엄선해 부처와 실무협의를 하면 합의가 되는 것이 서너 개밖에 안 됐다. 기획단이 일을 하는데도 이 정도니 개별 기업이 규제완화를 요청하는 경우는 안 봐도 선하다. 대부분이 사무관 선에서 묵살될 것이다.

김신=공무원들이 정말 시장경제나 규제개혁에 대한 마인드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자유시장경제에서는 원칙적으로 규제를 하면 안 되고 불가피하게 규제를 하려면 상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규제를 만들고 유지하려는 사람이 자유로운 시장을 왜 통제하는지에 대한 논리를 충분히 준비해 설득해야 하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규제를 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이다.

사회=어떻게 하면 공무원들의 생각이 바뀌겠는가.

김신=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은 경제학 공부를 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임용하는 과정에서 경제원론 시험을 의무적으로 보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공무원이 된 후 평가도 중요하다. 규제개혁의 성과뿐 아니라 규제를 하지 않는 것도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 평가가 단순히 건수 위주가 아닌 질적인 부분을 평가하는 시스템이 돼야 국가적으로 정말 규제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

사회=기획단의 규제개혁 진행속도가 더디다는 지적이 있다.

최보선=솔직히 처음에는 이행점검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개선 방안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나중에 보니 실제로 개선되려면 법과 시행령을 개정해야 했다. 부처를 좀 더 다그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본격적인 이행점검은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완화의 강도가 약하고, 최종 이행률도 낮게 나타났다.

사회=핵심적인 규제는 건드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김신=기업이나 단체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만 규제를 생각한다. 하지만 규제 체계는 구조적이고 정책적인 것에서 파생된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구조나 정책이 바뀌어야 개별 규제도 한꺼번에 바뀔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국민은 늘 '정말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것은 잘 안 되는구나'하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나창엽=개인적으로 그게 가장 아쉽다. 성역 비슷한 규제가 있다. 정부의 기본 방침과 어긋난다는 등의 이유로 안 되는 것이 많다. 수용되지 못한 과제들을 보면 하나같이 그런 부분에 걸려 있는 경우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쉽다.

김신=이미 이데올로기화된 규제도 있다. 수도권 규제나 출자총액 제한 같은 게 대표적인 것이다. 성역으로 굳어진 것이라 경제성 분석을 아무리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사회=일하는 과정에서 심한 저항을 받은 적도 있을 것 같다.

나창엽=전문적인 얘기지만 물류 분야 개선의 예를 한 가지 들어보겠다. 물류창고를 보면 짐을 부릴 때 비를 막으려고 차양막을 친다. 현행 규정상 3m를 넘지 못한다. 차양막은 트럭 크기를 고려하면 최소 5~6m는 돼야 한다. 이 문제를 건교부와 협의해 현장 실사를 거쳐 대안을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나중에 건교부가 내놓은 대안은 차양막의 면적을 건물 바닥 면적의 10%까지는 인정하는 것이었다. 대형 물류단지에는 건물 사면에 모두 차양막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새 규정을 적용하면 오히려 기존 3m짜리 차양막도 줄여야 할 판이다. 열심히 고쳐놓으니까 부처가 오히려 개악해 놓은 대표적인 사례다.

김신=기업에서 온 사람들 입장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공무원들을 닦달해야 하는 거였다. 사실 다시 돌아가면 자기 회사와 관련된 감독권을 가진 소관 부처다. 그런데 이행 실적이 부진하다고 닦달하고 따지기가 쉽지 않았다. 자기들이 직접 들고와 하다가 안 되니까 공조직의 힘을 빌린다고 미운털이 박힐 것이 걱정됐다.

사회=다음달이면 소속 회사로 돌아간다. 그간의 소회나 새로 구성될 2기 기획단에 조언이 있다면.

최보선=1기 기획단은 정부 조직 안에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건드렸다고 생각한다. 2기는 그걸 제외하고 새로운 과제를 발굴하거나 여러 제약으로 1기에서 추진하지 못한 과제를 수행하려면 힘이 들 것이다. 자체적으로만 해결하려고 들지 말고 관련 단체나 협회 등과 계속 상의하는 개방적 구조를 갖추면 좋을 것이다.

김신=좋은 경험이었다. 정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시장에서 수익 기회를 재빨리 낚아채야 하는 민간 기업과 다르게 정부는 여러 이해관계자와 예산의 제약을 안고 일을 하고 있더라. 신중할 수밖에 없고, 회의도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밖에서 볼 때 공무원들이 답답하다고 느꼈던 점 중 상당 부분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여기 파견된 공무원들도 민간에 대한 오해가 많이 풀렸을 거로 생각한다.

사회.정리=최현철 기자<chdck@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 규제개혁기획단=부처 간에 얽혀 있는 덩어리 규제를 풀기 위해 2004년 8월 27일 국무총리실 산하에 2년 한시 조직으로 출범했다. 공무원과 민간 파견 요원이 26명씩 같은 비율로 파견돼 일하는 특이한 조직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그동안 41개 전략과제와 그에 따른 1300여 개의 세부과제를 정해 규제 완화 작업을 해 왔다. 현재까지 법과 시행령 등 후속 조치까지를 포함하는 세부과제 완료 실적은 61% 수준. 국무총리실은 다음달 기획단을 폐지할 방침이었으나 전경련 등 경제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여 조직을 줄여 활동시한을 2008년 2월까지로 연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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