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재심 증인으로 법정 세울 것"…8차 화성 사건 재심 청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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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옥고를 치른 윤모(52)씨가 13일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윤씨의 변호인단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로 입건된 이춘재(56)의 자백과 과거 수사가 부실했던 정황 등을 설명하며 윤씨의 결백을 주장했다. 8차 화성 살인 사건의 진범인 이춘재와 윤씨를 범인으로 몰았던 과거 수사 당사자도 재심 재판의 증인으로 세우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의 공동변호인단 박준영 변호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의 공동변호인단 박준영 변호사(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재심 청구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씨의 재심을 돕는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이주희 변호사는 이날 오전 경기도 수원시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재심청구 이유 등을 설명했다. 이들은 형사소송법 420조가 규정한 7가지 재심 사유 중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제5호)와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제1호, 7호)를 토대로 재심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윤씨 무죄 증거 ①이춘재의 자백  

변호인단이 첫 번째로 내세운 윤씨의 무죄 증거는 '이춘재의 자백'이다. 이춘재는 경찰에서 "대문을 통해 피해자의 집으로 침입했다. 피해자의 집이 예전 친구 집이어서 집 구조를 기억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영 변호사는 "8차 사건 범인은 범행 후 피해자에게 다시 옷을 입혔는데 이춘재의 자백에 과거 범행 현장을 찍은 사진에 나온 것과 일치하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춘재는 피해자의 집과 방 구조도 상세히 묘사했는데 이런 것은 현장검증 속 사진과도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이춘재가 장갑을 끼고 범행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박 변호사는 "전문가와 피해자의 부검 감정서를 확인했는데 헝겊이나 장갑을 끼고 범행한 흔적이 발견됐다. 피해자의 왼쪽 볼에는 가격을 당한 흔적도 있었다"며 "하지만 윤씨의 사건 기록에는 장갑을 사용했다는 기록이나 폭행했다는 내용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백은 증거의 왕이고, 이와 동시에 가장 위험한 증거"라며 "이 사건에서는 30년 전 윤씨의 자백과 최근 이춘재의 자백 중 어느 것을 믿을 것인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서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한 윤모씨(52)가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서에서 열린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으로 복역 후 출소한 윤모씨(52)가 재심청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뉴스1]

윤씨 무죄 증거 ② 근거 부족한 국과수 감정서

과거 경찰 등이 윤씨를 8차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봤던 가장 큰 이유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감정 결과였다. 범행 현장에서 채취한 용의자의 체모와 윤씨의 체모를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조사했는데 두 체모가 동일인의 것으로 간주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은 8차 화성 살인 사건에만 활용됐다. 감정서에 기록된 12개 원소 중 3개는 측정치가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윤씨의 변호인단은 "이 조사 방법에 과학적 증거가 있는지를 유심히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씨 무죄 증거 ③수사 기관의 불법 행위

윤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밥을 먹던 중 수갑을 차고 경찰에 연행돼 3일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폭행을 당하고 '쪼그려 뛰기' 등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은 "불법 체포이고 감금"이라며 강압 수사의 증거로 당시 윤씨가 쓴 자술서를 소개했다. 초등학교 3학년을 중퇴한 윤씨는 서툰 글씨와 틀린 맞춤법으로 자술서를 작성했는데 한자어를 쓰기도 하고 '~했습니다'하는 경어체로 쓰다가 '~했다"는 평어체가 등장한다. 박 변호사는 "경찰들이 자술서 내용을 불러줬거나 글로 써 보여주며 작성하게 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모(52) 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13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 조사엔 윤씨가 일했던 농기계 수리점 사장이 조사 내내 동석했다고 돼 있다. 하지만 농기계 수리점 사장은 "조사 과정에 참여한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윤씨가 담을 넘어 침입했다면서도 현장검증 사진엔 이런 모습이 담기지 않았다. 윤씨는 1~3심 재판 과정에서도 국선 변호인의 조력도 받지 못했다.

김칠준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과거 사법부의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하지 않아서 벌어진 사건"이라며 "당시 사건 진행 과정에서의 경찰과 검찰, 국과수, 재판, 언론까지 왜 아무도 합리적 의심을 제기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재심 청구의 의미를 밝혔다. 변호인단은 윤씨의 재심 재판에 진범인 이춘재는 물론 당시 수사 경찰·검찰 등을 증인으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과거 경찰들이 "가혹 행위는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공소시효가 끝났어도 위증죄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 변호사는 "(과거 수사관 등이) 진실 규명에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춘재는 최근 경찰에 "윤씨의 재심 법정에 증인으로 설 의사가 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8차 화성 사건 범인으로 몰려 옥고를 치른 윤씨가 13일 재심 청구 기자회견장에서 낭독한 자필 편지. 최모란 기자

8차 화성 사건 범인으로 몰려 옥고를 치른 윤씨가 13일 재심 청구 기자회견장에서 낭독한 자필 편지. 최모란 기자

윤씨는 이날 미리 준비한 편지를 읽는 것으로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A4 용지 2장 분량의 편지엔 복역 기간부터 출소 후까지 도움을 준 사람을 언급했다. 그는 편지에서 "저는 무죄다"라며 "어머니께 감사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외가와 연락이 두절됐다. 모친인 박금식씨(고향 충북 진천)를 알고 있는 사람의 연락을 기다린다"고 전했다.

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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