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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서 못살겠다"···포항 지진 2년, 아직도 집으로 못가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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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났다. 당시 지진으로 포항에선 부상자 92명, 이재민 1800여 명이 발생하고 시설물 피해 2만7317건 등을 일으켜 총 피해액 3323억원을 기록했다.

[포항지진 2년- 상] #2년 지나도 트라우마 시달리는 주민들 #'포항지진 특별법' 제정도 계속 미뤄져 #답답한 시민들은 직접 손배소송 제기

지진 2년이 지난 지금도 여파는 이어지고 있다. 우선 아직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재민들이다.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 이재민 92세대 208명이 머무르고 있다. 다른 50여 명은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거주지에 산다. 아직도 이들은 지진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피해 보상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상 유례 없는 ‘지진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되고 있지만 최종 판결은 언제가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피해자 보상과 도시 재건, 책임자 처벌 등에 속도를 낼 수 있는 ‘포항 지진 특별법’의 제정도 한없이 길어지고 있다.

지진 2주년을 2주 앞둔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을 찾았다. 이재민들이 아직도 텐트 생활을 하고 있는 흥해실내체육관, 포항시가 임시 주거지로 제공한 컨테이너 단지, 이번 지진을 촉발한 원인으로 지목된 지열발전소에서 지진을 직접 겪은 시민들을 만났다. 그들은 입을 모아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재민 텐트촌’ 변한 체육관…‘누구 하나 죽어야 해결되나’

흥해실내체육관은 지난 2년간 체육관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곳이다. 2017년 11월 15일 흥해읍 일대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한 직후 줄곧 이재민들의 임시 대피소로 사용돼 오고 있어서다.

체육관 안팎에는 이재민들이 내걸어 둔 현수막이 빼곡했다. 멀리서 보면 현수막들이 형형색색으로 체육관을 꾸미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불통 포항시는 쇼하지 말고 소통하라’ ‘난민보다 못한 지진 이재민’ ‘타협불가! 설득 NO! 이주대책 YES!’ 등 이재민들의 애타는 마음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붉은 라카 스프레이로 휘갈긴 ‘누구 하나 죽어야 해결되나’는 문구에선 섬뜩함마저 느껴졌다.

포항 지진 2주년을 앞두고 아직도 200여 명의 이재민들이 살고 있는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 모습. 송봉근 기자

포항 지진 2주년을 앞두고 아직도 200여 명의 이재민들이 살고 있는 포항시 흥해실내체육관 모습. 송봉근 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바깥에 붉은색 라카 스프레이로 '누구하나 죽어야 해결되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바깥에 붉은색 라카 스프레이로 '누구하나 죽어야 해결되나'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체육관 안은 연분홍색 텐트가 발 디딜 틈 없이 설치돼 있다. 모두 221개 동이다. 지진이 일어난 지 2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전히 92세대 208명의 이재민이 남아 있다. 이날 오전 몇몇 이재민들이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날인 지난달 30일 국회 앞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참여했던 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재민 정모(80·여)씨는 “주거대책 마련, 지진 특별법 제정 등 말만 번지르르한 국회의원들에게 따지기 위해 모든 일을 젖혀두고 국회로 갔다”며 “이번에도 몇몇 국회의원들이 나타나서 연설했지만 자기 자랑만 실컷 하고 가더라”고 답답해했다. 그날 국회 앞엔 3000여 명이 모였다.

옆에 앉아 있던 60대 여성 이재민도 체육관 내부에 붙어 있는 사진과 그림을 가리키며 “이 흉물스러운 것들을 봐라. 더는 여기서도 못 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가리킨 곳엔 지진으로 벽이 쩍쩍 갈라진 주택을 찍은 사진과 시민단체가 이재민들이 집으로 돌아가길 기원하며 그린 수묵화가 여러 장 걸려 있었다.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이 일어난 직후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엔 여전히 텐트 221개동이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이 일어난 직후 임시 대피소가 마련된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엔 여전히 텐트 221개동이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내부에 한미장관맨션 지진 피해를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경북 포항시 북구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내부에 한미장관맨션 지진 피해를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포항=김정석기자

컨테이너서 맞는 두 번째 겨울…“집 안에 있어도 입김 나와”

체육관에서 약 1.5㎞ 떨어진 흥해읍 약성리에도 컨테이너 생활을 하는 이재민들이 있다. 주거용 컨테이너 33개 동이 모여 있는 이른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다. 포항시는 집이 전파(全破)된 이재민 중 일부에게 컨테이너로 만든 임시 주거지를 제공했다.

단지를 지키고 있는 관리인 이익재(64)씨는 “컨테이너 특성상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 두 번째 겨울을 맞는 이재민들도 요즘 가장 큰 걱정이 겨울 한파”라며 “텐트 생활보다는 낫지만, 컨테이너에서 오래 살다 보니 모두 지쳐 있고 예민하다”고 전했다.

컨테이너들이 바둑판처럼 설치된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는 평일 오전 대부분의 이재민이 출근을 해 한산했다. 한 컨테이너에서 TV 소리가 흘러나와 찾아가 보니 이문수(61·여)씨가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씨를 따라 들어간 약 25㎡ 크기의 컨테이너 안은 주방 겸 거실과 안방, 화장실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약 1.5㎞ 떨어진 곳에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가 건립됐다. 이곳에는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흥해실내체육관에서 약 1.5㎞ 떨어진 곳에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가 건립됐다. 이곳에는 지진으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컨테이너에서 생활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재민들의 임시 거주지가 모여 있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를 내려다본 모습. 33개동이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이재민들의 임시 거주지가 모여 있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를 내려다본 모습. 33개동이 설치돼 있다. 송봉근 기자

이씨는 “내가 죽을 때까지 살 것이라고 믿었던 아파트가 지진으로 완전히 부서졌다. 할 수 없이 컨테이너에서 2년 가까이 살고 있는데 불편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장판을 틀어도 겨울엔 집안에서 입김이 나온다. 한여름엔 근처 도랑에서 풍기는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고 싶지만,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 컨테이너끼리 너무 붙어 있어서 다른 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 물론 옆집에서 나누는 대화가 그대로 들린다”고 푸념했다.

이씨는 아직도 지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집을 걸어 다니면 바닥이 울린다. 동생이 집에 찾아와 밤중에 거실에서 걸어 다니는데 바닥이 울려 소스라치며 일어난 적이 있다”고 했다. 또 “차량에서 운전자가 내리는 모습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차 문을 닫는 소리가 나면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을 받는다”고 전했다.

지진 이재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의 한 이주민이 겨울을 앞두고 전기장판을 설치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진 이재민들이 모여 살고 있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의 한 이주민이 겨울을 앞두고 전기장판을 설치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재민들이 여전히 대피소와 임시 거주지에 머물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보상 절차는 아직 걸음마조차 떼지 못했다. 지진 피해 주민들과 포항시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이른바 ‘포항지진 특별법’이지만, 법안은 발의된 지 7개월째 소식이 없다. 특별법은 지진으로 피해를 본 주민들에 대한 구제와 심리 안정, 지진 발생 원인과 진상 규명 대책 등을 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여야 3당이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국회의원들은 말뿐이야”…직접 손배소 제기한 시민들

특별법은 국회 상임위에 발이 묶여 있다. 여야 정쟁으로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면서 특별법 제정도 미뤄지고 있다. 답답한 시민들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올려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청와대 답변의 요지는 “국회에서 법 제정을 추진해 주면 협력하겠다”는 원론적 내용이었다.

답답한 시민들은 산업통상자원부와 국회를 찾아가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국회 앞에 3000여 명이 모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철우 경북도지사와 장경식 경북도의회 의장, 이강덕 포항시장도 국회와 청와대, 정치권 지도부를 찾아가 특별법 제정을 수차례 호소했지만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지진 피해 포항 시민들로 구성된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진 피해 포항 시민들로 구성된 포항 11.15 촉발지진 범시민대책위원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시민 중 일부는 유례없는 ‘지진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소송을 주도하는 포항지진범시민대책본부(이하 범대본)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5월 각각 세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 정부와 ㈜포항지열발전, 지열발전소 운영업체 ㈜넥스지오 등을 상대로 1인당 하루 5000~1만원씩의 위자료를 요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인단이 총 1만2867명에 이른다. 지난 6월 25일 재판의 시작을 알리는 변론준비기일이 열린 후 지금까지 2번의 재판이 진행됐다. 오는 12월 23일 세 번째 재판이 예정돼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5일 검찰이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넥스지오, 포항지열발전 등 4곳을 압수수색했다. 지난 3월 정부합동조사연구단이 “지열발전소가 지진을 촉발했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범대본이 책임자를 처벌해달라면서 전 산자부 장관과 업체 대표 등을 살인과 상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지 7개월 만이다. 지진 촉발의 책임을 가리기 위한 절차도 이제야 시작된 셈이다.

정부합동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을 촉발했다"고 지목한 경북 포항시 포항지열발전소 건설 부지 모습. 송봉근 기자

정부합동조사연구단이 "포항지진을 촉발했다"고 지목한 경북 포항시 포항지열발전소 건설 부지 모습. 송봉근 기자

포항시 관계자는 “국민청원, 상경시위, 국회·청와대 방문 설득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를 얻지 못해 답답하다”며 “앞으로도 지진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는 세미나와 포럼을 열어 여론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치권에 지속적인 지원 요청을 할 방침”이라고 했다.

포항=김정석·백경서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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