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인데 18홀 골프?
11일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광주지법 앞. 5·18기념재단 등 5월 단체 회원들이 전두환(88) 전 대통령에 대한 강제구인을 촉구했다. 단체들은 “알츠하이머를 이유로 법정 출석을 거부해 온 전씨가 골프를 즐긴 것은 명백한 법정 모독과 국민 우롱”이라며 “재판부가 전씨의 법정 불출석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지난 7일 강원도 홍천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을 빚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자신의 재판에는 불출석하면서도 건강하게 골프를 치는 모습이 확인돼서다.
[이슈추적] #5월 단체들, "전두환 불출석 취소" 촉구 #11일 '전두환 회고록' 공판서 '출석' 공방 #재판 쟁점, 5·18때 헬기 사격 있었느냐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이날 “전두환은 매우 건강하다. 의식도 또렷하다. 재판에 불출석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재판부는 전씨가 출석해 재판을 받도록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전 전 대통령 측 법률 대리인인 정주교 변호사는 “법원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없으면 불출석을 허가할 수 있다”며 “피고인(전두환)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겠다고 밝혔고, 변호인의 출석만으로 충분히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불출석)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 재판의 본질은 1980년 광주 하늘에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며, 피고인 출석은 지엽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재판 쟁점, ‘5·18 당시 헬기사격’ 여부
고(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전 전 대통령의 재판 출석 여부를 놓고 또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건강상 이유로 재판에 불출석해온 상태에서 지난해 11월에 이어 또다시 골프를 즐긴 사실이 드러나서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이 2017년 4월 펴낸 『전두환 회고록』을 통해 ‘조 신부는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주장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생전에 증언한 조비오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전 전 대통령이 ‘5·18 당시 헬기사격이 없었다’고 쓴 회고록 내용의 허위성과 고의성 여부다. 재판부는 이날까지 8차례에 걸친 재판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이 이 내용이 허위 사실임을 알고도 고의로 썼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사자명예훼손죄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앞서 검찰은 5·18과 관련된 수사 및 공판 기록, 국가기록원 자료, 참고인 진술 조사 등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주장이 허위라고 판단했다. 5·18 당시 헬기 사격은 2017년 1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 결과와 지난해 2월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 등의 조사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됐다.
검찰, 국과수와 5·18기록 등 토대로 기소
법원 역시 『전두환 회고록』 내 ‘5·18 때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내용 등을 허위로 판단한 바 있다. 광주지법은 2017년 10월과 지난해 5월 『전두환 회고록』 제1권에 대한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당시 ‘해당 내용을 삭제하지 않고는 출판·배포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회고록의 허위사실 적시는 5·18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라고 덧붙였다.
전 전 대통령이 불출석한 이 날 8차 공판에서는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육군 항공대 지휘관 2명과 부조종사 2명 등 4명이 피고인 측 증인으로 법정에 섰다. 앞서 전 전 대통령 측은 송진원 당시 육군 1항공여단장 등 지휘관 3명과 부조종사 2명을 증인으로 신청했었다. 송 전 여단장 등은 과거 검찰 조사에서 “1980년 5월 22일 광주에 실탄을 실은 헬기 출동을 지시했지만, 사격을 지시하지도 보고받지도 않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전두환 회고록』 의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소송을 주도해온 김정호 변호사는 “5·18 당시 항공대 관계자들은 사실상 계엄군의 일원이어서 공범에 가까운 증인”이라며 “법률상으로도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진실한 증언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진창일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