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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출마 선언 당선은 레이건 뿐…블룸버그 뒤늦은 등판, 태풍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20년 대통령 선거에 가장 늦게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2020년 대통령 선거에 가장 늦게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내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가장 마지막으로 뛰어든 주자다.

그의 측근들이 지난 8일(현지시간) 앨라배마주 민주당 예비선거(프라이머리) 관리위원회에 2020년 대선 경선 출마를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 아직 대선 출마를 육성으로 발표하지는 않았다.

대선으로부터 1년이 채 안 남았고, 민주당 경선 시작일(2월 3일)에서 불과 87일 전이다. 이렇게 늦게 대선 레이스에 뛰어들어 성공한 사례는 40년 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뿐이다.

이 때문에 뉴욕시장을 3연임하고, 아무리 선거 자금이 풍부한 세계 9위 부호라 할지라도 "현실적으로 너무 늦었다"는 시각과 "약체인 기존 민주당 후보를 능가할 것"이라는 시각이 엇갈린다.

NYT "11월 TV 토론 참가 거의 불가능" 

미국 선거 절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블룸버그의 대선 레이스 합류가 시기적으로 너무 늦어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워싱턴포스트는 "블룸버그가 이렇게 늦은 시기에 뛰어들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뭔지, 민주당원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고 전했다.

블룸버그는 말 그대로 '막차'를 탔다. 지난 8일은 미 전역에서 가장 먼저 앨라배마주 프라이머리 후보 등록 마감일이었다. 이날까지 등록하지 않으면 앨라배마주 투표용지에 블룸버그 이름이 기재되지 않는다.

앞으로 블룸버그에게 관건은 짧은 시간에 이름을 알리는 것. 전국 생중계되는 민주당 TV 토론회 참가 자격을 얻는 게 당면 과제다. 하지만 자격 요건이 만만치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블룸버그가 11월 20일 열리는 TV 토론 무대에 오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토론회 6일 전까지 기부자 16만 5000명을 확보하고, 4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 이상을 얻어야 참가할 수 있다.

12월 TV 토론은 기부자 20만 명 확보, 4개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4% 이상으로 기준이 더 높아진다. 올해 초부터 선거 운동을 해 온 주자들 가운데 이 기준을 충족하는 후보는 6명에 그친다. 블룸버그는 한 달 만에 성과를 내야 한다.

1987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연설을 마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1987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에서 연설을 마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11월 출마 선언 후 당선, 레이건 유일

선거 운동 기간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근거도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역사를 돌아보면 늦가을인 10~11월 출마를 선언하고 소속 정당 대선 후보를 꿰찬 뒤 백악관에 입성한 후보도 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짧은 대선 레이스를 펼친 대통령은 1980년 당선된 로널드 레이건이다. 레이건은 79년 11월 중순(대선 357일 전) 출마를 발표했다.

1988년 대선에 출마한 조지 HW 부시 대통령은 전년도 10월 13일(392일 전), 1992년 대선에 나온 빌 클린턴은 전년도 10월 3일(397일 전) 출사표를 던졌다.

다만, 레이건과 부시, 클린턴 세 대통령은 공식 출마 선언 6~8개월 전부터 조직을 만들고 자금 모금과 유세를 했다고 NPR은 전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과 맞수, 언제 출사표 던졌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대 미국 대통령과 맞수, 언제 출사표 던졌나.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일찍 선거운동을 시작해 실패한 후보도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2007년 4월(대선 654일 전) 출마를 선언했으나, 더 늦게(633일 전) 나온 버락 오바마 후보에 민주당 경선에서 졌다.

힐러리는 2016년 대선 때는 576일 전 출사표를 던졌으나, 더 늦게 나온(512일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패했다.

NPR은 "출마 선언일과 당락 사이 일정한 연관성을 보이지 않지만 1996년 이후 공화·민주 양당 후보의 출마 선언이 대부분 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이뤄졌다"고 전했다.

가장 최근인 2016년 대선은 주요 후보 가운데 가장 늦게 출마한 트럼프가 승리했다. 2014년 12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2015년 3월 테드 크루즈 텍사스주 상원의원, 4월 클린턴의 뒤를 이어 6월 뉴욕 맨해튼 트럼프 타워에서 출마를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지난 7월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미디어 관련 회의에 참석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미디어 관련 회의에 참석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로이터=연합뉴스]

아직 '찻잔 속 태풍'…측근 "출마 안 할수도"

AP통신은 블룸버그가 전통적인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후보들이 승부를 거는 초반 경선 지역인 아이오와·뉴햄프셔·네바다·사우스 캐롤라이나 4개 주를 목표로 하지 않고, 가장 많은 경선이 열리는 '슈퍼 화요일(3월 3일)'을 노린다는 것이다.

블룸버그가 최종적으로 출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악시오스는 앨라배마 경선 출마 서류 제출은 대중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조치이자 출마라는 '선택지'를 갖기 위한 방편이라고 블룸버그 측근을 인용해 보도했다.

기업가 출신인 블룸버그는 실용적이고 데이터를 중시하기 때문에 승리가 확실하다는 여론 조사 결과에 따라 공식 출마 발표를 저울질해왔다는 것이다.

미 여론조사기관 모닝 컨설턴트가 10일(현지시간)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블룸버그는 4% 지지율로 민주당 대선후보 중 6위에 머물렀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31%로 1위였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20%),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18%),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8%),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6%) 순이었다

블룸버그의 등장으로 민주당 대선 후보 판에 지각 변동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셈이다.

트럼프와의 양자 가상대결에서는 43%를 얻어 트럼프(37%)보다 우위에 있었다. (모든 민주당 후보는 트럼프와 양자 대결에서 이기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블룸버그에 대한 비호감도는 25%로 전체 민주당 후보 가운데 가장 높았다. 2020년 대선 판을 뒤흔들 태풍이 될지, 미풍으로 끝날지 아직 알 수 없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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