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차라리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울먹이던 그 아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35)

“장애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보살핌도 중요하지만, 그 장애아동을 둔 가정의 비장애 형제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 사회가 자칫 등한시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장애아동 가정의 비장애 형제입니다.”

장애아동을 둔 가정에서 부모가 온통 장애아동에게 신경을 쓰는 동안 비장애 형제는 상대적인 박탈감, 소외감에 시달릴 수다는 푸르메 재단 백경학 이사의 말이다.

푸르메재단이 장애아동 가족을 위한 제주 힐링캠프에 앞서 공항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아동에 대한 직접 봉사를 넘어 그 가정에 대한 관심에까지 봉사역역을 넓혀가고 있다. [사진 푸르메재단]

푸르메재단이 장애아동 가족을 위한 제주 힐링캠프에 앞서 공항에서 설명을 하고 있다. 푸르메재단은 장애아동에 대한 직접 봉사를 넘어 그 가정에 대한 관심에까지 봉사역역을 넓혀가고 있다. [사진 푸르메재단]

우리는 이제껏 봉사활동을 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직접적인 봉사대상에만 관심을 기울여 왔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는 동안 직접 봉사 대상의 뒤편에 있으면서 직접 봉사대상에 어쩌면 큰 영향을 끼치는 대상에 관해서는 관심을 덜 가져 왔었다. 그 결과는 어땠는가? 비장애 아동이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으로 인해 장애를 입고 있는 형제를 미워하거나 심지어는 부모나 사회에 대한 원망의 마음을 갖게 할 수도 있다. 우리의 무관심이 비장애 아동으로 하여금 사회에 대한 일종의 원망적인 시각을 갖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저는 사실 아픈 동생이 가끔 밉다고 생각했었어요. 어떤 때는 동생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동생이 차라리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요.” 어떤 캠프에 참석했던 한 아이가 울먹이며 했던 말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그 아동의 그런 마음이 어리고 모자란 생각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가 이런 현실에 얼마나 무관심하고 소홀히 대했는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니 오래전 직장생활 때 어느 해 크리스마스이브가 생각난다. 지방에서 근무할 때인데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 복장을 하고 장애아동을 둔 가정에 선물을 들고 방문한 적이 있었다. 이른 저녁 집에 혼자 있던 비장애 아동이 깜짝 놀라며 상상외의 일이 벌어졌다는 듯 웃을 듯, 울 듯하며 선물을 받아 들던 기억이 난다.

그 이튿날 그 아이의 엄마가 내 사무실로 찾아와 “고맙습니다. 사실 OO가 이제껏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왔거든요. 선물은 고사하고. 사는 게 그렇고, 작은 애에게만 온통 신경을 쓰다 보니 그럴 겨를이 없었거든요”고 말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했겠는가?

제주해안가를 걷는데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어렵사리 수확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도움은 당연한 일. 그 결과는 푸짐한 뿔소라 한 바구니. 봉사는 희생이 아니다라는 걸 다시한번 증명해 준다. [사진 푸르메재단]

제주해안가를 걷는데 물질을 마친 해녀들이 어렵사리 수확물을 끌어 올리고 있다. 도움은 당연한 일. 그 결과는 푸짐한 뿔소라 한 바구니. 봉사는 희생이 아니다라는 걸 다시한번 증명해 준다. [사진 푸르메재단]

얼마 전 장애 형제를 둔 비장애 아동을 데리고 점심을 먹은 후 나눈 얘기가 있다. “부자라고 자랑할 것 없단다. 부자라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단지 좀 편하다는 것뿐이다. 가난하다고 창피할 것도 없어, 불행한 것도 아니고. 단지 좀 불편할 뿐이지. 있잖니. 드레스가 편안한 옷은 아니지. 불편하지. 그래도 그 불편함을 이겨내고 입으니까 아름답잖니? 똑같은 것 같아. 경제적으로 모자라더라도 잘 극복해 내는 삶이 더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말이 되나? 어떻든 경제적으로 썩 부유하지 않아 혹 잘 사는 친구와 비교해 우울해 할까 봐 조심스레 건네 본 얘기였다. 그리고 문구점에 들러 평소에 갖고 싶은 학용품 있으면 골라보라고 했다. 혹 비싼 거 고르면 어쩌나 하는 얄궂은 생각은 그 아이가 고른 학용품 앞에서 날 부끄럽게 만들었다. 내 딴에는 부유하지 못한 환경 때문에 위축되지 않을까, 고르라고 하니까 비싼 것 고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는데 다 부질없었다.

어른들이 걱정하는 만큼 아이들은 나약하거나 이기적이지 않다. 장애아동을 형제로 둔 비장애 아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의젓하고 자기 일을 스스로 해 나가는 능력이 출중하다. 다만 가끔 상대적 비교로 인해 흔들릴 뿐이다.

여기서 어른들이 해야 할 역할이 명쾌해진다. 조그만 관심과 배려면 된다. 무엇을 크게 베풀 필요도 없다. 무엇을 얼마만큼 주기를 고민하기보다는 무엇을 얻게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하다. 목표 지점에 직접 데려가는 것도 좋지만 스스로 목표를 찾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게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이제 그를 인식할 정도까지 성숙한 사회다. 우리는 이 성숙한 사고에 조그만 힘만 보태면 된다.

장애 아동을 둔 가정의 비장애 형제에 대한 배려는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심과 지원은 그들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는 것은 물론 장애 형제에 대한 사랑을 더 갖게한다. [사진 pixnio]

장애 아동을 둔 가정의 비장애 형제에 대한 배려는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이러한 관심과 지원은 그들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는 것은 물론 장애 형제에 대한 사랑을 더 갖게한다. [사진 pixnio]

장애아동을 형제로 둔 비장애 형제에게 '이 사회가 나에게도 관심과 사랑을 베푸는구나' 생각하게 한다면 그들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하는 것은 물론이고 장애형제에 대한 사랑을 더욱 갖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장애아동을 둔 가정의 비장애 형제에 대한 작은 배려와 지원은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 역할을 하게 한다. 현대음악의 가스펠송이라 평가되는 폴 사이먼과 가펑클의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의 가사가 떠오른다. “당신이 맥이 빠져 어두운 기분일 때, 당신의 눈에 눈물이 넘칠 때, 내가 다리가 되어 줄게요.” 아, 얼마나 아름다운 삶인가.

그렇다. 우리 어른들은 자칫 소외되고 사랑으로부터 열외됐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장애아동을 형제로 둔 비장애 아동들에게 이 험한 세상에는 너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을 베풀 어른들이 항상 함께한다는 인식을 줄 필요가 있다. 험한 세상을 건너는 다리가 되어 주는 어른이, 사회가 있으니 자신감을 갖고 꿋꿋이 살아가라는 용기를 주자.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이 장애아동에 대한 직접 사랑 대신 비장애 형제가 장애 형제를 더욱 아끼고 보살피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