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시설·방송국 무차별 폭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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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스라엘 지상군이 레바논 남부로 진입해 헤즈볼라 거점을 점령함으로써 중동 사태가 다시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22일 개전 후 처음으로 헤즈볼라 무장대원들과 치열한 시가전을 벌인 끝에 국경에서 2㎞ 떨어진 마룬 알라스 마을을 점령했다. 해발 900m가 넘는 이곳은 전략적으로 요충지다.

이스라엘은 "아직 대대적인 지상군 투입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스라엘군 라디오를 포함한 현지 언론은 군사령부가 앞으로 더 많은 병력을 동원해 국경에서 30㎞ 떨어진 리타니강 인근에 '완충지대'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로켓탄 사정거리만큼의 완충지대를 둠으로써 헤즈볼라의 로켓이 이스라엘 주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겠다는 계산이다.

이스라엘군은 완충지역 설치 예정지 내 14개 마을에 거주하는 레바논 주민들에게 모두 떠나라고 명령했다. 23일 새벽에는 탱크와 불도저를 동원해 지상군 진입을 위한 도로를 만들었다. 이어 레바논 시돈 지역의 종교시설과 군부대를 공습했다. 민영방송사 송신탑과 이동통신회사 안테나도 폭격당해 방송이 중단되고 휴대전화가 불통됐다.

지난 12일간의 이스라엘 공습으로 레바논에선 민간인과 군인 등 모두 370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2일 보고서에서 레바논에서 60만 명에 이르는 난민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의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22일에는 영국 런던, 미국 시카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호주 시드니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수만 명이 참가한 반전 시위가 동시다발로 열렸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도 1000여 명의 유대인과 아랍인이 "전쟁은 재앙이다" "유대인과 아랍인은 적이 되기를 거부한다" 등의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국제사회의 중재 노력도 활발해지고 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이 카이로를 시작으로 중재 외교에 착수했으며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은 23일 이스라엘에 도착했다. 26일에는 로마에서 라이스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중동평화 회담이 열린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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