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에 아시아 음악을 입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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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몸짓도 갈수록 격렬해졌다. 막이 내리자 관중들은 겨우 한숨을 내뱉었다. 70분간 이어지던 팽팽한 긴장에서 해방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박수가 쏟아졌다.

재독 작곡가 박영희(61.브레덴 국립예술대)교수의 첫 오페라 '달 그림자'의 공연 현장이다. 박 교수의 30여 년 유럽활동을 결산하는 자리다. '달 그림자'는 세계현대음악 페스티벌(7월14일~29일) 공식 초청작. 박 교수가 5년간 공을 들여 고대 그리스 작가 소포클레스의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새롭게 해석했다. 특히 대사 일부에 재독 철학자 한병철씨가 각색한 선시(禪詩)를 담아 눈길을 끌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21일 초연된 박영희(작은 사진) 독일 브레덴 국립예술대 교수 첫 오페라 ‘달그림자’의 한 장면.


박 교수는 "가장 유럽적인 소재인 오이디푸스를 통해 우리 각자가 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일본인 작곡가 마코도 시노하라씨는 "아시아 음악의 정적인 특징을 잘 살려냈다"며 "박 교수는 고 윤이상 선생 이후 유럽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라고 평가했다.

1974년 독일로 건너간 박 교수는 스위스 보스윌의 세계작곡제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1위에 입상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94년 독일어권에선 처음으로 대학 작곡과 주임교수에 오른 여성 음악인으로 꼽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현대음악 페스티벌=국제현대음악협회(ISCM)가 주관하는 80여 년 전통의 음악제. '현대음악의 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세계 최고의 규모와 권위를 자랑한다. 해마다 나라를 바꿔가며 열린다. 올해엔 50개국, 200명의 작곡가가 참여했다.

슈투트가르트=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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