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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섭 한나라당 새 대표 "참정치 실천 위해 시민단체와도 손 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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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강 대표는 한나라당을 따뜻한 체온과 눈물이 있는 정당으로 탈바꿈시켜 국민의 신뢰를 받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강정현 기자

만난 사람 = 이하경 정치 데스크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얼마 전까지 대권을 향해 뛰었다. 상상력과 속도를 주제로 한 그의 '두바이 구상'이 그런 차원에서 나왔다. 그러다 7.11 전당대회를 1개월 앞두고 당대표 출마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고는 색깔론과 대리전 논란으로 뜨거웠던 경선전에서 극적으로 승리했다. 내년에 있을 당의 대선 후보 경선전에 그는 '선수'가 아닌 '심판'으로 출전하게 됐다. 어느 때보다 치열하게 전개될 대선 후보 경선전을 어떻게 이끌어 갈지 강 신임 대표에게 물었다.

이하경 정치 데스크와의 인터뷰는 20일 국회 당대표실에서 진행됐다.

-강 대표의 골프 자제령 속에 홍문종 경기도당 위원장을 포함한 한나라당 원외 위원장들이 대표적 수해 지역인 정선에서 단체로 골프를 쳤습니다. 이래서야 '웰빙 정당', 국민의 아픔을 아랑곳하지 않는 기득권 세력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수해의 고통 분담 기간 중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민께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죄드립니다. '여리박빙(如履薄氷.살얼음을 밟는 것 같은)'의 심정으로, 석 달 열흘 계속 현충일이라 생각하고 자중할 것입니다."

-당대표로 선출된 지 열흘이 지났는데 좀 어떠십니까.

"수해 현장 다니고, 인사안에 대해 여러 최고위원과 상의하고, 일부 최고위원은 사찰에 가 계신데 당무에 복귀하게 해야 하고, 그런 복잡한 상황을 겪었어요. 하지만 인사를 포함해 원만하게 출발하게 돼 기쁩니다."

-임명직 최고위원과 사무총장을 포함한 당직 인사를 단행했는데, 스스로 몇 점으로 평가하십니까.

"100점이란 없는 거고, 최소한 80점은 한 거 같아요. 소장파와 호남을 우선 배려했지요. 우리 당은 국회의원 대부분이 영남 출신인데 이번에 당직 맡은 사람 중 절반이 수도권입니다. 이재오 최고위원을 밀었던 사람도 이리저리 배치했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대표로서 당을 어떻게 꾸려나갈 생각입니까.

"당장의 제1 목표는 공정 경선관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내년 일이지요. 지금부터 연말까지 한나라당을 바꾸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금까진 박근혜 전 대표가 누란의 위기에 처한 당을 건져 여기까지 왔습니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요. 하지만 이젠 정권을 만드는 당으로 가야 합니다. 한나라당은 물기가 필요해요. 습기.눈물 이런 게 있어야 합니다. 따뜻한 체온도 있어야 합니다. 그 체온이 국민에게, 서민에게 전달돼야 해요. 그러기 위해 한나라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 내겠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 건가요.

"먼저 '참정치 실천운동본부'를 만들려고 합니다. 정치권은 그동안 국민과 상관없이 정파싸움에 몰두했어요. 이합집산과 정계개편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가 아닌 수권정당으로서의 진실한 면을 보여주는 것을 참정치라 부르고 싶어요. 도덕성 회복과 돈 문제는 진짜로 참회해야 합니다. 군림하는 자세가 아니라 가진 자가 베푸는 봉사의 자세를 보여줘야 하지요. 이런 뼈대 위에서 외부인사.시민단체와 손잡고 참정치를 실천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이 따뜻해지고 깨끗해졌을 때 손을 내밀어 다른 집단이나 세력과 연대하고 우리 땅을 넓힐 것입니다."

-지금 한나라당이 시민단체하고 연대하겠다고 하셨습니까.

"예. 자꾸 더럽다고만 하지 말고 우리를 한번 지도해 달라, 맑은 정신을 우리에게 넣어 달라, 우리도 할 수 있다, 실망 안 시키겠다, 같이해 보자고 하겠습니다."

-내친김에 당 이름을 바꿀 생각이 있습니까.

"저는 5선 의원이 될 때까지 한번도 탈당하지 않았는데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소속 당명이 바뀌었어요. 외국사람 만나 명함을 주면 '왜 자꾸 정당을 바꿨느냐'고 물어요. 대표가 바뀔 때마다 정당 이름 바꾸는 게 바람직하지 않아요. 바꾼다면 대선 후보 경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서도 한나라당의 부정적 이미지가 안 고쳐졌을 때 과거와 단절하자는 의미에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식당 이름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주방장을 바꾸고 음식이 좋아져야 합니다. 식당 장사 안 된다고 식당 이름 바꾸는 건 안 할 겁니다."

-한나라당은 과거 이인제 의원의 경선 불복으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당의 분열 가능성을 거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오히려 여권발 정계개편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당이 잘 안되니까 판을 흔들어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흔들었다고 우리 쪽에 쓰나미로 연결되진 않을 겁니다. 우리는 대선에 두 번 실패하면서 학습효과가 생겼어요. 이번에 전당대회를 치러보니 대의원 출석률도 높고 치열하더군요. 예전엔 행사장 밖에 나가 담배 피우고 누가 대표가 되건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이번엔 정권교체의 열망이 느껴졌어요. 우리 심정이 이렇게 처절한데 그 애원에 가까운 심정을 외면하고 자기 이해관계 때문에 뛰쳐 나가면, 정치적으로 성공도 못하고 매장될 것입니다. 그런 일은 내가 막을 것입니다. 그런 빌미를 주는 대표가 돼선 안 되겠지요."

-공정한 경선을 위해 대선 후보 경선관리위원회를 약속했는데, 언제 만들 생각입니까.

"올해는 아닙니다. 정기국회 활동을 해야 되고, 당을 바꾸는 게 우선이지요. 대선 주자 입장에서도 지금부터 힘 뺄 이유가 없어요. 경선관리위원회를 빨리 만들자는 얘기는 경선 끝에 별생각 없이 나오는 겁니다. 일찍 만들면 경선이 과열되지요."

-대선 승리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봅니까.

"우리가 뭉쳐 후보를 잘 뽑고 나머지 후보가 결과에 승복하고, 여기에다 한나라당이 조금 더 따뜻해지고 비전을 주는 정당이 되면 틀림없이 이깁니다."

-한나라당 집권을 제약하는 약점은 뭔가요.

"분열하는 겁니다. 또 지금까진 야당이니까 여당 비판만 하면 됐는데, 내년부터는 한나라당의 정견이 있어야 합니다. 경제는 이렇게 하고, 외교는 이렇게 하겠다는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합니다. 늦어도 내년 초엔 당의 청사진이 나오고 그게 후보와 접목되도록 하겠습니다."

-좌파와 부패세력을 뺀 범보수 세력과 연대하겠다고 하셨는데요.

"우선 우리가 깨끗해야 합니다. 따뜻하고 깨끗한 게 우선입니다. 그런 뒤 우리와 생각이 같으면 뉴라이트도 좋고, 민주당이나 국민중심당도 좋습니다. 연대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 의원도 한나라당 노선과 맞아 당에 들어오겠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지요. 종교 지도자와 시민단체, 젊은 층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할 테고, 그것에 공감하는 세력을 향해 지지층을 계속 넓혀 가겠습니다."

-대선 출마를 꿈꾸다 막판에 당대표 경선 참여로 진로를 바꾼 계기는 무엇입니까.

"지방선거 지원유세 다니며 생각이 바뀌었어요. 당원들이 '당신이라면 당을 잘 통합시킬 수 있을 테고, 그것만 해도 시대에 봉사하는 것'이란 기대를 보이더군요. 1박2일간 제부도에 들어가 밤 새우며 고민한 뒤 달려들었습니다. 내년에 정권 창출 못 하면 나는 정계 은퇴합니다. 아니 은퇴가 아니라 축출이지요."

-인간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시장 중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두 사람 모두와 가까운데, 이 전 시장과 먼저 만났습니다. 14대 국회의원을 같이했어요. 나와 이 전 시장이 그때부터 의원공부 모임인 한백회 회원인데, 지금도 이어집니다. 조찬 세미나를 많이 했어요. 박 전 대표는 뒤늦게 만났지만 박 전 대표가 처음 출마할 때 인연이 있습니다. 박 전 대표가 1998년 대구 달성 재.보선에 출마했는데 당시 내가 선거대책위원장이었습니다."

-정치하면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이었나요.

"96년 15대 국회서 신한국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당시 대구엔 김영삼 정권의 인기가 없었어요. 주변에서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라는 권유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철새가 되기 싫어 정면돌파했지요. 신한국당 공천으론 대구서 나만 혼자 당선됐어요. 내 철학으로 도전해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컸지요. 이번에 당대표가 된 것도 기쁩니다."

-당대표 경선과 관련해 이재오 후보에게 미안한 게 있습니까.

"미안한 거 없습니다. 서로 선의의 경쟁을 했습니다. 내가 먼저 민정계라고 공격받았지, 이재오 후보를 먼저 민중계라고 공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되는 바람에 이재오 의원이 1등을 못한 것은 미안하지만 경쟁하면서 악의적으로 한 거 별로 없습니다."

정리=최상연.신은진 기자 <choisy@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