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두우칼럼

거꾸로 본 한나라 전당대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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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경사는 많지만 웃지 못한다." 새해 심심풀이로 본 토정비결이 이런 내용이라면 기분이 어떨까. 요즘 한나라당이 꼭 이렇다. 5.31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대승을 하고도 드러내 놓고 자축할 수 없었다. 선거 바로 다음 날부터 언론과 국민은 "한나라당의 승리가 아니라 현 정권과 여당에 대한 심판일 뿐"이라고 쐐기를 박았기 때문이다. 7.11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도 그리 즐겁지 못하다. 당 안팎에서 '도로 민정당'이니 '영남당으로의 회귀'니 하는 비판이 따갑기 때문이다.

정당은 선거 승리가, 정치인은 당선이 최대 목표 중 하나다. 목표를 달성하고도 기뻐할 수 없다면 정상적 상황은 아니다. 그렇다고 억울해 할 것까지는 없다. 자초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은 여전히 수억원대의 공천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차떼기 정당'의 꼬리표를 떼는 데 실패했다.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여 주지도 못했다. 전당대회 과정에서도 '색깔론'과 '대리전' 논란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이 손가락질할 때 반대편에서 사태를 보면 숨겨진 진실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전당대회에서 이재오 의원은 2위를 해 대표가 되지 못했고, 소장파 단일후보로 나선 권영세 의원이 6위를 하는 바람에 5명을 뽑는 최고위원에 아슬아슬하게 들지 못했다. 다음 날 이 의원은 당무를 거부하고 전남 순천의 선암사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당 공천으로 3선 의원이 됐고, 사무총장에 원내대표까지 지냈는데 이제 와서 '민중당 출신'이라며 색깔론으로 공격했다" "박근혜 전 대표가 강재섭 의원의 편을 들었다"는 게 불만의 요지였다. 거꾸로 이 의원이 대표가 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강 의원이 "당 공천으로 5선 의원이 됐고, 원내대표와 부총재까지 지냈는데 이제 와서 '민정당 출신'이라고 색깔론을 제기하느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이 의원의 편을 들었다"고 반격하지 않았을까.

"만약 이 의원이 자신에 대한 색깔론 공세에 '공개 사과하지 않으면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나섰다면 어떻게 됐을까요.(박성민 민기획 대표)" 강 의원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전당대회 결과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러지 않은 것은 자신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권주자 대리전 논란도 그렇다. 박근혜 전 대표가 경합자인 이 전 시장과 각별한 사이인 이 의원이 대표가 되는 것을 뒷짐 지고 보고 있으리라 기대했던가. 부당하다고 여겼다면 당시에 문제 삼았어야 했다. 선거가 끝난 뒤 당무를 거부하는 모습은 투정으로 비칠 뿐이다.

소장파도 다를 바 없다. 전당대회장에 내걸린 권영세 의원의 플래카드에는 한나라당 의원과 당원협의회장의 절반에 가까운 114명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최고위원에 선출되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이변이었다. 소장파의 대표격인 남경필.정병국 의원은 "이슈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다른 의원은 "소장파 단일후보의 파괴력을 두려워한 곳에서 작전세력을 투입해 결과를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나름대로 타당성은 있다. 소장파가 색깔론이나 대리전 논란을 일거에 잠재울 비전을 제시해 대의원들을 사로잡았더라면, 작전세력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면, 하다 못해 단합이라도 했더라면 전당대회는 2파전이 아니라 3파전이 될 수도 있었다. 소장파 후보 경선에 나섰던 임태희 의원은 "소장파는 아직 실력이 모자람을 인정해야 한다"며 "실력이 있다면 주관식이든 객관식이든 문제를 탓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재오 의원은 재야 민주화 운동권의 대표적 인물로서 한나라당에 들어가 당의 수구화를 막는 데 일조했다. 소장파는 '젊은 보수'로서 한나라당의 개혁에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전당대회에서는 전략 부재와 판단 착오로 한나라당의 '도로 민정당화'를 막지 못했다. 그 실패를 깨끗이 인정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도 살고 당도 산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