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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도망친 ‘교육감’ 형, 도주 뒷바라지한 ‘국회의원’ 동생

중앙일보

입력

"최규호씨 맞습니까?"

대법원, 최규호에 징역 10년 원심 확정

지난해 11월 6일 저녁, 인천광역시 연수구의 한 죽집에 자리 잡은 70대 남성에게 검찰 관계자가 다가섰다. 홀로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그는 '최씨가 맞느냐'는 질문에 "맞습니다"라고 대답했다. 2010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도중 잠적했던 최규호(72) 전 전북도 교육감의 8년 도피생활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검찰 수사 도중 잠적…8년간의 호화 도피

잠적 8년 만에 검거된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이 지난해 11월 7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지검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잠적 8년 만에 검거된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이 지난해 11월 7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전주지검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골프장 확장 사업을 도와주고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최 전 교육감은 2010년 9월 11일 검찰에 "내일 아침 자진 출두하겠다"고 말한 뒤 이튿날 잠적했다. 검찰은 그해 12월 수배령을 내리고 검거에 나섰지만 신병 확보에 실패했다. 인천의 한 식당에서 검찰이 그를 다시 마주한 건 꼬박 8년하고도 2개월이 지난 뒤였다.

최 전 교육감은 '도망자 신분'인데도 서울과 인천에서 제3자 명의의 휴대전화와 카드를 쓰며 수억 원대 차명 아파트(24평)에서 산 것으로 조사됐다. '김민선'이라는 가명을 썼던 그는 매달 약 700만원을 쓰며 테니스·골프·댄스·당구 동호회 활동을 했다. 최 전 교육감은 도피 기간 최소 4억9000만원을 사용했다고 한다.

도주 도운 건 국회의원 동생

최규성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지난해 12월 4일 전북 전주시 전주지방검찰청에서 친형인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의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최 전 사장이 조사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며 떠나고 있다. [뉴스1]

최규성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지난해 12월 4일 전북 전주시 전주지방검찰청에서 친형인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의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조사를 받았다. 최 전 사장이 조사를 마치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을 하지 않으며 떠나고 있다. [뉴스1]

최 전 교육감의 도피는 친동생인 최규성(69)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이 도왔다. 최 전 사장은 2004년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17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19대까지 내리 3선을 했다. 친형의 도피를 도왔던 시기는 최 전 사장이 현역 국회의원이었을 때도 포함됐다.

최 전 교육감은 도피 초기부터 최 전 사장과 긴밀히 연락했다. 도피 기간 내내 지인 등 3명의 명의로 1026차례에 걸쳐 진료를 받았다. 진료 내역에는 만성 질환 외에 피부 노화 방지와 머리카락 심기 등 미용·성형 시술도 포함됐다. 검거 직후 모습을 드러낸 최 전 교육감은 70대 고령인데도 "도주 전보다 더 젊어졌다"는 얘기까지 나오며 '황제 도피'란 비판을 받았다.

최 전 교육감은 2007년 7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김제 스파힐스 골프장 확장 과정에서 교육청 소유인 자영고 부지를 골프장 측이 매입하는 데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3억원을 받은 혐의(특가법상 뇌물)로 구속기소 돼 1심에서 징역 10년과 추징금 3억원을 선고받았다.

최 전 사장은 최 전 교육감이 8년간 도피할 수 있도록 부하 직원 등의 명의를 빌려 주민등록증과 카드·휴대전화·계좌 등을 만들어 준 혐의(국민건강보험법 위반)로 불구속기소 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징역 10년 추징금 3억"…대법원 원심 확정

수뢰 후 8년간 도피 생활을 했던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왼쪽)과 그를 도운 동생 최규성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오른쪽)이 2월 14일 전주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각각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 전 교육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3억원을 추징할 것을 명령했다. 또 형의 도피에 도움을 준 혐의로 기소된 최 전 사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수뢰 후 8년간 도피 생활을 했던 최규호 전 전북교육감(왼쪽)과 그를 도운 동생 최규성 전 한국농어촌공사 사장(오른쪽)이 2월 14일 전주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각각 실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 전 교육감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고 3억원을 추징할 것을 명령했다. 또 형의 도피에 도움을 준 혐의로 기소된 최 전 사장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연합뉴스]

1심 재판부는 최씨 형제가 고위 공직자로서 도덕적 책무를 저버린 점을 강하게 질타했다. 당시 박정대 부장판사는 "최 전 교육감은 뇌물수수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자 공범에게 자신이 대검찰청에 힘을 쓰고 있으니 버티라고 하거나 돈을 배달한 제자에게 거짓으로 진술할 것을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뇌물수수죄의 공소시효 만료만을 기다리며 상당한 액수의 도피 자금으로 8년 넘는 장기간 여유로운 도피 생활을 한 점, 검거된 직후 수사기관에서 '도피 기간 다른 사람 도움을 전혀 받은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거나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다만 범행을 모두 인정한 점, 전립선암 치료를 받은 점, 벌금형 외 별다른 전과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최 전 교육감은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전 사장은 항소하지 않아 형이 그대로 확정됐다.

대법원의 판단도 같았다. 대법원 제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31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최 전 교육감의 상고심에서 징역 10년과 추징금 3억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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