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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성희의 시시각각

일상의 포르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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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국제 공조 수사 끝에 세계 최대 규모 아동 포르노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W2V)’의 범행 전모가 드러났다. 충격적이다. 운영자는 23세 한국인 남성, 검거된 헤비 유저에도 한국인이 제일 많았다. 운영자는 19세 때 사이트를 열었고, 한국인 이용자 대부분은 평범한 20대 직장인 남성이었다. 말이 포르노지, 영아에서 10세 미만 아동이 상당수 포함된 끔찍한 아동 성범죄 현장이다.

국감장 리얼돌, 레깅스 몰카 무죄 #아동 포르노 사이트 운영자에 관대 #아직도 낮은 성인지 감수성 드러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한국 경찰은 ‘아동 음란물 단속’이라고 한 반면 미국·영국은 ‘아동 성 학대 구출’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사법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은 더욱 분노를 샀다. 미국에선 1회 다운로드만으로도 징역 70개월, 보호관찰 10년, 7명 피해자에 3만5000달러 배상 판결이 나왔으나, 한국인 운영자는 징역 1년 6개월이 고작이었다. “초범이고 다른 회원들이 올린 영상도 많으며 결혼해서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게 우리 법원의 판단이었다. 너무도 안이한 인식이다.

앞서 국회 산자부 국정감사장엔 무소속 이용주 의원이 전신 인형 성인용품 ‘리얼돌’을 들고나와 논란이 됐다. 사람과 똑같은 리얼돌을 옆에 앉혀놓고 발언했다. 커가는 리얼돌 시장에서 다른 나라들이 앞서가고 있다며 “산업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산업 진흥에 나서라는 요지였다. 국회의원의 상식 이하 성인지 감수성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날 이 의원은 미국에선 AI 섹스로봇까지 개발 중이라고 역설했으나 사실 날로 심각해지는 디지털 성 착취 이슈는 4차산업 혁명 시대의 그림자, 사회 문제로 부상 중이다. 최근 BBC에 따르면 ‘딥 페이크(얼굴 합성) 포르노’의 25%가 K팝 여가수였다. 새롭게 등장한 ‘이미지 기반 성 착취’다. W2V 역시 다크웹과 비트코인을 무기로 범죄행각을 벌였다. 또 리얼돌 지지자들은 장애인·노인 등 성적 약자들을 위한 용도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렇다면 굳이 실제 인간 모습일 필요가 없다. 아동 형상을 하거나 지인이나 유명인의 얼굴을 주문 제작하는 등 인권침해 우려도 크다.

무엇보다 그 뒤에는 남성의 성욕은 해소돼야만 하는 통제 불능의 것이며 그를 위해 여성 대상화는 불가피하다는 오래된 남성 중심적 통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남성의 욕망이 중요하면 여성의 존엄성도 지켜져야 한다. 건국대 윤김지영 교수는 “남성들의 치료와 성욕 해소를 위한 도구적 존재로 여성 신체가 형상화되는 일이 여성들에게 어떤 인격침해나 심리적 훼손을 유발하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리얼돌의 본질은) 수동적이며 언제든 침해 가능한 여성 신체에 대한 장악 의지”라고 비판했다.

사실 남성의 성욕은 통제 불능이란 통념은, 음란·포르노물 심지어 성범죄 영상까지도 남자들의 당연한 취미생활로 여기는 ‘야동문화’의 근간이 된다. 어쩌면 W2V 이용자들도 스스로 성범죄자라기보다는 하드코어 포르노를 즐기는 야동 애호가로 여겼을지 모를 일이다. 여전히 인터넷에 무수히 돌아다니는 ‘몰카’ 불법 촬영물들도 마찬가지다. 여성에게는 지하철을 타고, 화장실을 가고, 옷을 갈아입고, 사랑을 나누는 일상적인 행위가 카메라에 몰래 찍혀 단톡방·웹하드에 유통되며 ‘일상의 포르노화’가 이뤄지는 시대다. 이런 일상의 포르노화에 대한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 반면 일상의 포르노를 죄의식 없이 ‘놀이’로 소비하며 남성다움의 증표로 삼는 문화. 이 두 가지가 충돌해서 발화한 젠더 갈등이 날로 전면화·심화하는 게 지금 대한민국이다.

그제 법원은 레깅스를 입은 여성의 하반신을 몰래 촬영한 남성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레깅스가 일상복이라 성적 수치심을 일으킨다고 볼 수 없다”는 등의 이유였지만, 레깅스든 뭐든 본인의 의사에 반한 촬영 자체가 범죄 아닌가. 일상복이라면 몰래 촬영해도 괜찮다는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은 어느 시대 것인지 묻고 싶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