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 오른 "국방예산 낭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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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9일 국방부감사에선 군사장비조달 등 국방예산의 부당 사용 문제가 오랜만에 거론돼 주목을 끌었다. 평민당의 권노갑 의원이 군 당국의 무기 및 장비조달과 관련한 2조원 규모의 부정을 저지른 의혹이 있다고 폭로했고 이에 이상훈 국방장관 등 국방부 측이 반격에 나서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됐다.
이날 아침 김대중총재가 『권 의원이 큰 것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고까지 했었는데 권 의원은 부정사례라며 명기한 대형차트까지 동원, 비위사실을 적시.
권 의원은 △물자의 고가도입 △초과 품 처리 후 재 구입 △장비도태 △장비의 정비 및 유지 등 4개 분야에 80년 이후 4조원이 투입됐으나 2조원이면 충분했다고 주장하면서『대기업과의 수의계약에 따른 독점공급임을 감안할 때 정경유착에 의한 정치자금 거래의 가능성까지 생각할 수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권 의원은 50여 개에 달하는 물자·장비의 품목번호·시중 가·구입 가 등을 실례로 들어가며 추궁.
권 의원은 대기업과와 수의계약으로 구입하는 장비·부속품을 고가로 구입해 1조원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는데 M48전차엔진 구입단가가 6백 만원인데 비해 동형인 K1전차는 1억5백80만원이며 △K1전차의 미션 값이 2억4천5백 만원으로 엔진 값보다 비싸며 ▲국산불도저부품이 외제보다 3백∼5백%나 비싸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이밖에 기중기구입에서는 30여 억 원, 그레이더에서는 87억 여 원의 예산손실이 있으며 80∼88년 사이에 처리한 초과 품 규모만도 2조7천여 억 원에 상당한다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장비를 고가로 구입하고 초과 품을 고철 값으로 불하하는 등 연평균 3천억 원 상당의 초과 품을 처리했으며 또 연평균 1천억 원 상당의 장비를 도태시켜 예산을 낭비했다고 비난했다.
또 국내정비가 가능한데도 외국에 의뢰하거나 각 군간에 동일장비의 유지비가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점도 지적.
그 예로 통신장비 AN/PRCU의 경우 유지비가 공군은 1백76원인데 해군은 9만4천77원, AN/PRC77은 해군이 6천7백98원인데 육군은5천7백82원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 측은 권 의원의 주장을 사전입수하고 대수롭잖게 생각했다가 신문에 대서특필되어 군 당국이 대형부정사건을 저지른 것처럼 비쳐지자 이 장관은 철저한 해명을 하도록 관계 관에게 지시하곤 감사 중인데도 기자실에 들러『피감 측의 해명도 없이 일방적인 얘기만 쓸 수 있느냐. 60만 군의 이름으로 책임을 묻겠다. 같은 크기로 국방부 측 해명을 게재해야 한다』고 흥분.
해명에 나선 국방부는 권 의원이 가져온 차트를 그대로 사용, M-48과 K1전차는 전혀 다른 모델이며 성능이 다르고 88년 기중기 값이라고 말한 4천만원은 물건값이 아닌 유지·정비비용을 오인했다고 지적.
또 권 의원이 외제보다 3∼5배 비싸게 사들였다는 중장비 부품 가는 70년대 군원으로 들어온 값을 환율만 변경 표시했을 뿐인데 평면적으로 대비한 오류라고 지적. 따라서 이 부분에서 1조원 정도의 손실이 있었다는 주장은 사실 판단을 잘못한데서 나왔다고 공박.
국방부는 권 의원이 연평균 3천억 원 상당을 초과 품으로 처리했다고 말하지만 사들인 금액 전체가 평균 2천1백억 원이고 초과 품 처리 액은 8백30억 원이라고 해명.
이밖에 같은 무전기·지프 등의 운영유지비가 군별로 2배∼5백 배 차이가 나며 최저가로 운영했을 경우 수백 억 원을 절약할 수 있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같은 지프라도 산악지대를 누비는 육군의 경우와 비행장내를 운행하는 공군의 경우는 다를 수밖에 없다고 힐난조로 해명.
국방부의 답변이 계속되는 동안 권 의원은『더 구체적인 자료를 보내 달라』고 요구했고 군 출신인 유학성 국방위원장(민정)의『이해됐느냐』는 질문에도 권 의원은『이해 안 간다』고 대꾸.
이날 몇몇 의원들이 국방예산의 오용가능성을 질문했는데 권 의원의 지적이 사실에 얼마나 접근 했느냐의 여부에는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그 동안 군기 법 등 보호막에 싸여 금기 시 됐던 국방예산에도 메스가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한증 좌로서의 의미부여는 가능할 것 같다. <김현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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