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재정 위해 나라살림 건전성 포기? 내년 재정적자 3%룰 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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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3% 룰’이 내년부터 깨진다. 재정 당국이 그간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재정 건전성 기준을 무너뜨리면서까지 확장재정을 펼친다는 뜻이다.

3% 넘은 건 외환·금융위기때뿐 #소주성특위서도 확장재정 공방 #KDI “경기 대응 효과 크지 않아”

23일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2019~2028년 중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올해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2.4%에서 내년 3.7%로 커진다. 이후 2021~2024년 4%대를 유지하다가 2025년부터 낮아진다. 이에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올해 38%에서 2024년 50.5%까지 올라간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관리재정수지는 한 해 나라 살림이 얼마나 건전한지 재무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정부는 그간 ‘3% 룰’을 일종의 마지노선으로 여겼다. 2016년 정부가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인 재정건전화법안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유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유럽연합(EU)도 회원국에 ‘GDP 대비 3% 이하’의 재정적자 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에 우리가 이 비율이 3%를 넘은 적은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과 1999년,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9년 등 세 차례밖에 없다. 2010~2018년 연평균으로도 1.3%에 불과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 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우리 경제가 커지는 속도보다 정부 씀씀이가 훨씬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재정 지출을 더 늘려도 나라 살림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가채무비율은 GDP 대비 40%를 넘지 않으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0%에 비교하면 매우 양호한 수준이라는 것이 근거다. 전문가들은 재정 확대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잠재성장률 제고를 위한 구조 개혁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는 필요성과, 예산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며 “중요한 것은 예산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는 것인데, 근본적인 경제 정책 전환이 수반되지 않는 한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통령 직속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개최한 ‘구조전환기, 재정정책의 역할과 방안’ 토론회에서도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민간의 경제활력이 부족할 때 재정이 적극적으로 나서 경기변동을 완화하는 것은 정부의 당연한 책무”(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9.3% 증가한 내년도 예산으로는 부족하고 두 자릿수 (증가율로 예산을)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홍장표 소주성특위 위원장) 등 정부 측 인사는 확장 재정의 필요성을 피력했다.

그러나 재정수지가 나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공공경제연구부장은 “미·중 무역분쟁이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기 때문에 재정확장 자체의 경기대응 효과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경상 성장률 회복이 지체될 경우 세입부족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중장기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는 노력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는 “정부가 확장적인 정책을 펴더라도 재정 승수가 높은 사회간접자본(SOC) 분야에 더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성주 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구조개혁이 수반되지 않는 확장적 재정정책은 높은 수준의 국가부채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구조개혁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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