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정시 확대보다는 학종 개선" 다음날, 文 "정시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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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있다. 변선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있다. 변선구 기자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대입에서 정시 비율의 상향을 공식화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부정 의혹으로 촉발된 대입 정시 확대 주장에 대통령이 직접 손을 들어준 셈이다. 교육부는 학생부 종합전형 등 수시 비율이 높은 상위권 대학의 정시 비율 확대를 우선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행 대입은 물론 교육제도 전반의 지각변동이 예상되는 가운데 교육계 안팎은 벌써 찬반양론으로 갈라졌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 연설에서 "정시 비중 상향을 포함한 ‘입시제도 개편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최근 시작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전면 실태조사를 엄정하게 추진하고, 고교 서열화 해소를 위한 방안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대입 정시 비율을 높이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건 이날이 처음이다. 조 전 장관 자녀의 입시 특혜 의혹이 불거진 이후 교육부는 "학생부 종합전형의 문제점 개선에 집중하겠다"며 정시 비율 상향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전날인 21일 국회 교육위원회 국감에서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시 확대 요구는 학종이 불공정하다는 인식 때문에 높아지고 있는 게 아닌가 본다. 학종 공정성에 대한 것을 먼저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에선 정시 확대 목소리가 계속 커지고 있었다. 21일 국회 교육위 소속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에서 "교육부는 자사고와 외고의 일반고 전환뿐 아니라 대입 정시 확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여당 지도부에서 정시 확대 주장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조국 사태' 이후 자유한국당도 정시 확대를 당론으로 채택한 상태였고, 민주평화당도 "50%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21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의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날 문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후 교육부는 "대입 수시 비율이 높은 상위권 대학에 정시 비율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전체 대학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비율을 확대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하지만 당·정·청 협의에 따라 수시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상위권 대학이 수시를 줄이고 정시를 늘려달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당·정·청에서 논의하고 있는 대입 개편안의 최종안은 다음 달 말 발표 예정인 교육부의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에 담길 계획이다.

교육부가 다음 달말 발표한 최종안에 따라 지난해 국가교육회의의 권고로 일단락됐던 정시-수시 논쟁도 재점화할 전망이다. 지난해 대입 공론화를 진행했던 국가교육회의의 권고에 따라 정부는 2022학년도 입시까지 대입 정시 비율을 3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밝혔다. 최종안에 따라 1년 만에 다시 정시·수시 비율도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5일 부산 동래구 중앙여고에서 수험생이 응원을 받으며 수능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일 부산 동래구 중앙여고에서 수험생이 응원을 받으며 수능 고사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교육계에선 혼란이 예상된다. 특히 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가 학교 정상화, 공교육의 황폐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반발해온 전교조, 진보교육감 등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문 대통령의 "대입 공정성 제고를 위한 교육개혁"을 언급하자 전교조 등은 "대입 개편이 정시 확대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정시 확대를 주장해온 측은 환영 입장을 밝혔다. 이종배 공정사회를위한국민모임 대표는 "대통령이 이제라도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에 대해 다행"이라며 "만약 조국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요식행위거나 총선을 앞둔 정치적 발언이라면 국민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선여고 대강당에서 열린 종로학원의 2020학년도 대입 변화예측 및 전략설명회를 찾은 학부모들이 연사들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다. [뉴스1]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진선여고 대강당에서 열린 종로학원의 2020학년도 대입 변화예측 및 전략설명회를 찾은 학부모들이 연사들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다. [뉴스1]

정부의 정시 확대 권고에 대학들이 얼마나 충실히 따를지는 미지수다.  21일 국회 교육위 감사에서 오세정 서울대 총장은 정시 확대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신중하게 결정할 사안”이라며 답변을 유보했다. 홍기현 교육부총장은 사견을 전제로 학종에서 비교과영역을 폐지한다고 해도 서울대는 정시 확대 대신 면접을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발언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 직후 수도권 4년제 대학의 입학처장은 "학생 선발 주체인 대학, 학생 교육을 맡은 고교 등과의 협의 없이 국민 여론과 정치적 논리만을 고려해 정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면서도 "상당수 대학이 결국 '돈줄'(재정지원)을 쥐고 있는 교육부의 뜻을 거스르긴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학생·학부모의 혼란도 예상된다.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지난해 진통 끝에 대입제도 개편에 어느 정도 합의했는데, 올해 들어서만 수차례 방향이 바뀌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특히 당장 학종을 염두에 두고 대입을 준비하는 학생‧학부모가 대통령 발언으로 갈팡질팡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천인성·전민희 기자
guch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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