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우성의 재발견' … 드디어 충무로 정상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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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연기를 잘하는 배우는 많습니다.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지요. 원작자.시나리오 작가.감독.제작자.스태프 모두에게 감사합니다. 그분들 덕에 이런 행운을 갖게 됐습니다."

올 대종상의 최고 주인공인 '왕의 남자' 감우성(36)은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목이 메었다. 아내에게 감사의 말을 돌리다가 잠시 숨을 고르기도 했다. 광대 장생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그는 올 대종상에서 최대 이변을 일으켰다. 연기력에 비해 상복 없는 스타라는 꼬리표도 떼어냈다.

올 남우주연상은 막판까지 혼전이었다.'너는 내 운명'으로 2005년 대한민국 영화대상.청룡영화상을 휩쓸었던 황정민, 월드스타로 도약 중인 '태풍'의 장동건 등 막강한 후보들이 끝까지 경합을 벌였다.

감우성의 남우주연상 수상은 2002년 '결혼은 미친 짓이다'로 충무로에 입성한 후 4년 만에 이뤄진 것이다. 그는 이 영화로 대한민국 영화대상(2002)과 백상예술대상(2003)에서 신인 남우상을 받았다.

'왕의 남자'가 한국영화 흥행기록을 갈아치우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도 그는 신예 이준기나 이준익 감독에 가려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2006 대종상은 그간 저평가됐던 배우 감우성의 재발견이라는 기대 밖 수확을 거뒀다.

감우성은 1991년 MBC 공채 탤런트로 출발했다. 서울대 동양화과 출신이라는 배경에 부드러운 외모로 귀공자나 모범생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의 연기세계에 전환점이 된 것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유하 감독). 여성팬들을 사로잡아온 TV속 달콤한 왕자님 이미지를 벗어던진 파격적 역할이었다.

이후 그의 행보는 남달랐다. 작품을 고르는 눈, 자기세계에 대한 고집, 미디어의 환호에 연연하지 않는 냉정한 자세가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장르도 다양하게 오갔다. 2004년 잇따라 출연한 공포영화 '거미숲'과 '알 포인트'에서는 '지적인 공포 연기'라는 어려운 과제를 무난하게 풀어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 평단은 TV탤런트 출신인 그에게 찬사를 유보했다.

다섯 번째 영화인 '왕의 남자'는 마침내 그에게 설욕의 기회를 줬다. 이 역시 출발은 순조롭지 않았다. 병역비리로 물의를 빚은 장혁 대신 캐스팅됐고, 이미지가 사극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도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선이 가는 외모의 핸디캡을 깨고 투박하고 구성진 광대 연기에 성공했고, 최다 흥행기록 신화에도 일조했다.

그에게 올해는 남다른 해가 될 것이 틀림없다. 대종상 남우주연상 수상에 앞서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연애시대'에서도 섬세한 연기로 브라운관을 점령했다. 극중 부부로 나온 손예진과 함께 일본 CF에도 첫 출연했다.

올 초에는 15년간 사귀어온 동료 탤런트 강민아와 결혼했다. 그의 한결같은 사랑이 화제가 됐다. 사생활은 철저히 지키고 싶어하는 그답게 결혼식 일정을 미디어에 일체 공개하지 않았다.

차기작은 김수로와 호흡을 맞추는 박정우 감독의 '쏜다'. 경찰서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가 하루 동안 짜릿한 일탈을 꿈꾸는 영화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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