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취재수첩에서 찾아낸 엘비스의 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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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피터 해리 브라운·팻 H. 브로스키 지음

성기완 외 옮김, 이마고, 788쪽, 2만5000원

그가 죽은 지도 벌써 30년이 다 됐다. 그래도 그의 신화는 여전한가 보다.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도 그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체면이고 뭐고 없이 미국 부시 대통령 앞에서 그토록 방정 맞게 다리를 떨었을까.

엘비스 프레슬리는 록큰롤의 황제이며 미국 대중문화의 아이콘이다. 또한 미끈한 외모와 타이트한 옷차림으로 표현되는 섹스 심볼이자 욕망의 분출구다. 그가 여성 편력이 심하고, 약물을 즐길 것이란 짐작은 익히 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책은 엘비스의 전기다. '용비어천가'마냥 결국엔 엘비스 찬양을 담지만, 그 과정은 세밀하고 냉철하다. 기자 출신인 저자들이 10년간에 걸쳐 모은 자료와 300명이 넘는 주변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엘비스의 인생을 새롭게 구성한다. 수시로 문서보관서를 드나들며 그의 흔적들을 되짚었고, 심지어 병원 입원 기록까지 꼼꼼히 챙겼다. 이토록 적나라한 얘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저자들의 철저한 '취재' 덕분이다.

책엔 엘비스의 매니저였던 게이브 터커의 이런 말이 그대로 인용된다. "엉덩이를 흔들면 좋겠는데. 그러면 여자애들이 흥분할 거야. 스트립 걸이 남자들을 흥분시키려고 보여주는 쇼에 변화를 준 거지." 기성 세대로부턴 지탄을 받았지만 자유와 젊음의 상징으로까지 부각된 그의 '허리 돌리기 춤'과 '엉덩이춤'이 알고 보면 철저한 매니지먼트사의 작업에 의했다는 것이다. 책엔 심지어 남성성을 강조하기 위해 바지 안에 묵직한 뭔가를 넣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투어를 다닐 때마다 닥치는 대로 낯선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한 그의 여성 편력도 여과 없이 드러난다. 또한 그에게서 빠질 수 없는 건 약물이다. 그런데 약물 중독의 주범 역시 바로 매니지먼트사였다. 무리한 일정을 잡아놓고 공연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약물을 흡입하게 한 뒤 각성제.진정제 등을 든 주치의와 늘 함께 하게끔 했던 것이다.

약물에는 찌들었으면서도 술.담배는 전혀 안하고, 성적으론 문란하면서도 초현실주의와 사후 세계에 심취한 이중성. 책을 읽고 나면 엘비스로 대표되는 미국 대중 문화가 과연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겉으론 싸구려 천박함이 넘쳐나지만, '뿌리 없음'에 대한 갈증으로 무언가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절박함이 때론 면면히 흐르는 전통의 무게감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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