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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야경? 팍팍한 삶 덮은 허깨비에 우린 왜 감탄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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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51)

저녁 먹고 세체니 다리에 밤 산책을 나왔다. 이곳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는 다뉴브 강을 사이로 서쪽의 부다와 동쪽의 페스트가 나뉘는데 이쪽 페스트에서 보는 부다 왕궁의 야경, 반대편 왕궁에서 보는 페스트의 야경, 남쪽의 겔레르트 언덕에서 보는 강의 양쪽 즉, 부다와 페스트의 야경이 이 도시가 자랑하는 대표 관광상품이다.

‘야경 감상? 웃기는 일이지’… 왕궁 쪽 야경을 바라보며 불과 일 년 만에 내 감정이 차갑게 변했음을 느낀다. 멀리서 불빛을 바라보는 건 허깨비 같은 일이다. 저 안의 억척스러운 삶이 노란 전구 빛에 잘 가려질수록 세상은 더 아름다워지니 야경은 아주 잔혹한 거짓이다.

체코 프라하 시내의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로와 전차, 크로아티아 로빈의 반질반질 닮은 돌길. 내게는 전깃불 조명에 속는 화려한 아름다움보다 평범한 일상의 야경이 더 다가왔다. [사진 박헌정]

체코 프라하 시내의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로와 전차, 크로아티아 로빈의 반질반질 닮은 돌길. 내게는 전깃불 조명에 속는 화려한 아름다움보다 평범한 일상의 야경이 더 다가왔다. [사진 박헌정]

체코 프라하에 머물던 작년 이맘때, 외곽의 숙소에서 쉬다가 밤에 시내에 나간 적 있었다. 관광명소인 카를교 양쪽의 구시가는 항상 인파로 붐비는 곳이다. 상인들의 번득이는 눈빛, 불쾌한 바가지요금, 피곤에 찬 식당 종업원의 불친절…. 낮에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하던 그곳은 단체관광객이 모두 빠져나가 을씨년스러운 파장 분위기였다. 강 건너 프라하성의 야경도 성 아래쪽 강변 주택들의 불이 꺼져 있어서인지 몇 년 전 처음 보았을 때보다 초라해진 느낌이었다.

좀 걷고 싶어 프라하성쪽으로 카를교를 건넜다. 성니콜라스교회에서 좌회전해서 포석이 박힌 우에즈트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며 방금 본 ‘화장 지워져 가는’ 프라하 시내의 밤 풍경을 생각하다가, 문득 눈앞의 펼쳐진 도로와 간간이 나오는 불빛을 느끼게 되었다.

‘이 야경도 꽤 괜찮네.’ 눈앞에 보이는 프라하 부심지의 밤거리는 별로 자극적이지 않았다.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로와 반질반질 닳은 돌, 적당히 어두운 거리를 오고 가는 트램들, 빠르게 걸어가는 늦은 퇴근길의 아가씨, 가게 문 닫고 있는, 팔뚝에 털이 굽실굽실한 뚱보 주인, 모임 끝나고 헤어지기 전에 레스토랑 앞에서 삼삼오오 모여 선 사람들의 왁자지껄함…. 어쩌면 저녁 준비하는 냄새나 담배 연기, 지린내 같은 후각 자극이나 취객의 고성 같은 청각 자극도 이 낯선 도시의 시각적 충격을 거들었을지 모른다.

언제부터 '야경'이 돈 주고 보는 상품이 되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입장료 내고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 사람들과 어깨 싸움하며 시내 불빛을 내려다보거나, 강에서 유람선을 타고 밤바람 맞으며 양안의 불빛을 쳐다보는 것, 아니면 다리 같은 커다란 구조물에 조명을 비추어 웅장함이나 신비로움을 느껴보는 것….

그렇게 말하자면 야경은 '불쇼', 즉 전깃불을 감상하는 투어였다. 어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느끼지 않고 밝음과 어둠을 극적으로 조합하고 대비시켜 만들어낸 ‘자극’에 맞춰 들뜨는 일이었다.

그러니 바깥에서 하는 전깃불 구경은 아주 적극적이고 호들갑스러운 야경 감상법이다. 그 속에 들어가 걸으면서 사람 사는 모습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피부로 느껴보는 야경 감상도 꽤 괜찮다고 생각하자 빈 도심의 밤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한 노랫말이 시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봄비를 맞으며 걷는다
멈춰 바라보는 쇼윈도우에는
내 한숨이 비쳐흐르고
이슬처럼 꺼져버린 내 희미한 꿈 속에는
잊을 수 없는 그 사람 눈동자
네온사인 꺼져가는 밤
누가 버렸을까 흩어진 꽃다발
- 〈서울야곡〉에서 되는대로 발췌, 변용

그나마 작년에 본 프라하의 야경에는 어느 정도의 편안함과 행복감이 깃들어 있었다. 이제는 같은 것을 보면서도 다른 느낌의 침범을 받는다. 이곳 부다페스트에서 있었던 유람선 사고 때문이다. 상처란 그런 것이다. 한 번의 통증이 아니라 오래도록, 아니면 영원히 뭔가에 침해당한다. 그 충격은 야경에 대한 환상을 산산이 깨 놓았다.

오래전에, 부산항의 야경이 세계적인 야경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랑스럽게 생각한 적 있었다. 그때는 달동네의 야경이 더 멋지고 작은 집들일수록 불빛이 촘촘해서 더 예쁘다는 것을 몰랐다. 팍팍한 현실을 살짝 내려덮은 어둠, 불빛은 그 어둠을 부수고 가느다란 안식을 기어이 다시금 왁자지껄한 세상으로 끌어낸다. 우리는 어둠 깊은 그곳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댄다.

유람선 사고가 났던 머르기트 다리 아래에는 몇 개의 꽃바구니와 불 꺼진 초가 놓여있고 주변에는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의 일상이 있었다. [사진 박헌정]

유람선 사고가 났던 머르기트 다리 아래에는 몇 개의 꽃바구니와 불 꺼진 초가 놓여있고 주변에는 휴일을 즐기는 시민들의 일상이 있었다. [사진 박헌정]

며칠 전에 유람선 사고장소에 다녀왔다. 몇 개의 꽃바구니와 불 꺼진 초가 놓여있었고 다리에는 추모 편지가 붙어있었다. 주변에는 부다페스트 시민 몇 사람이 이쪽에 신경 쓰지 않고 벤치에 앉아 쉬고 있었고, 한국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한 대 지나갔다.

전부 창문 이쪽 편에 서서 쳐다보고 있었는데, 인솔자는 어떻게 설명했을 것이고 다들 어떤 마음이었을까. 늘 느끼는 것이지만 산 사람은 죽은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말이 더 장황하게 많아지는지 모른다. 짧은 기도를 했다.

유람선 사고 이후에도 야경을 감상하는 유람선은 계속되고, 모두의 삶도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느낌이 다르다. 상처란 한번의 통증이 아니라 오래도록, 아니면 영원히 뭔가에 침해 당하는 것이다. [사진 박헌정]

유람선 사고 이후에도 야경을 감상하는 유람선은 계속되고, 모두의 삶도 같은 패턴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느낌이 다르다. 상처란 한번의 통증이 아니라 오래도록, 아니면 영원히 뭔가에 침해 당하는 것이다. [사진 박헌정]

지금도 밤마다 야경을 보기 위해 강에는 유람선이 떠다니고 세체니 다리 아래에는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이어진다. 레스토랑에서는 악사 반주에 맞춰 취한 관광객들이 노래 부르고 춤춘다. 손님도, 업주도, 악사도, 강변의 야경 감상자들도 모두 그들 나름의 삶이 있겠지. 선한 인생들이여, 먹고 마시고 부르고 춤추며 이 어둠을 즐기자. 약한 빛은 더 강한 빛에 잡아먹히는 게 빛의 속성,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감쪽같이 사라질 세상이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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