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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가방서 드라이어,손전등,사발면 빼고 넣은 것들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48) 

한 달 동안 생활할 짐을 싸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사막이나 무인도에 가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의 짐을 꾸리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챙기면 여행용 트렁크 두 개로 충분하다. [사진 pixabay]

한 달 동안 생활할 짐을 싸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차피 사막이나 무인도에 가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의 짐을 꾸리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챙기면 여행용 트렁크 두 개로 충분하다. [사진 pixabay]

은퇴 부부의 해외 한 달 살기, 드디어 내일 떠난다. 커다란 트렁크 두 개를 펴놓고 목록 봐가며 이것저것 짐을 챙기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래도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 여행의 즐거움 90%는 짐 쌀 때, 나머지 10%는 첫 기내식 먹을 때다.

작은 배낭부터 시작한다. 여기엔 여권, 돈, 바우처, 카메라, 노트북이 들어간다. 일종의 ‘하드 드라이브’니 여차하면 이것만으로도 여행할 수 있다. 그런데 약, 휴지, 셀카봉, 충전기… 계속 넣다 보면 아무리 헐렁하게 시작해도 결국 빵빵해진다.

이제 큰 가방 차례, 몇 번의 한 달 살기 경험에서 얻은 우리만의 짐 싸기 방법을 공개해본다. 호텔 대신 살림 도구 갖춰진 아파트를 빌린다는 전제조건이다.

우선 대원칙은 ‘최소한’의 짐이다. 한 달 동안 필요한 물건을 다 가져갈 수는 없다. 그 기간 내내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정착’ 개념이 들어가니 여기에서 장 보고 생활비 지출하는 것처럼 거기서도 필요한 것은 사서 쓰면 된다. 따라서 옷, 세면도구, 화장품 같은 것은 필요한 만큼 챙기고, 현지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평소에 내가 편하게 쓰던 것들을 잘 챙겨야 한다.

경험을 통해 필요성을 실감한 물건들. 이삿짐 테이프부터 시계방향으로 멀티탭과 익스텐더, 리셉터클 스위치, 이태리 타올, 스마트폰용 삼발이, 손잡이 돋보기와 돋보기안경이다. [사진 박헌정]

경험을 통해 필요성을 실감한 물건들. 이삿짐 테이프부터 시계방향으로 멀티탭과 익스텐더, 리셉터클 스위치, 이태리 타올, 스마트폰용 삼발이, 손잡이 돋보기와 돋보기안경이다. [사진 박헌정]

대표적인 게 돋보기안경이다. 손잡이 달린 2000원짜리 돋보기도 하나 더 챙기면 쇼핑 등 외출 시에 주머니에서 편하게 꺼내 쓸 수 있다. 다음은 리셉터클 스위치. 외국에선 노란 전구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들은 어둠에 익숙한지, 집을 분위기 있게 꾸미려는 건지, 전기료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곳곳의 불을 다 켜봐도 형광등에 적응된 우리에게는 너무 어둡다. 가뜩이나 낯선 곳에서 깨알 같은 영어 글씨를 읽어가며 정보를 얻는데 노안으로 잘 보이지도 않고 어둡기까지! 전구 꽂아 필요한 곳에 걸거나 고정해 사용하면 좋다.

또 집안 구조나 배치가 내 마음 같을 수 없다. 화장실에서 핸드폰 충전하고, 현관에서 노트북 작업 하지 않으려면 길이 넉넉한 멀티탭도 필요하다.

우리는 가끔 뜨거운 탕에 들어가 줘야 하는데 욕조 없는 집에서 한 달 동안 샤워만 하면 씻은 것 같지도 않다. 이때 이태리 타올로 온몸을 박박 밀어주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물비누 대신 때 잘 빠지는 고형비누도 유용하다.

주방 도구가 갖춰졌다고는 해도 밥공기, 젓가락은 없으니 천원 샵에서 가벼운 스테인리스로 준비하고, 인터넷으로 앙증맞은 2인용 전기밥솥 하나 사고, 남은 음식 보관을 위해 플라스틱 밀폐 용기도 몇 개 포개 넣는다.

다른 사람이 머물던 집에 들어가면 처음에 열심히 쓸고 닦은 후 생활하지만 천 소파만은 어쩔 수 없어 찜찜하다. 그래서 이불 홑청처럼 얇은 천을 가져가 깔고 지낸다. 케이블타이, 노란 고무줄, 이삿짐 테이프, 포스트잇도 챙겨가면 이동이나 짐을 재포장할 때 유용하다.

여행 기간이 길수록 음식 짐의 부피가 부담스럽다. 우리 음식은 기본적인 양념 중심으로 챙기고 현지에서 시장을 봐서 조합하면 좋다. [사진 박헌정]

여행 기간이 길수록 음식 짐의 부피가 부담스럽다. 우리 음식은 기본적인 양념 중심으로 챙기고 현지에서 시장을 봐서 조합하면 좋다. [사진 박헌정]

다음은 식료품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장김치다. 마트 판촉 사원에게 말하면 가장 덜 익은 걸 랩으로 단단하게 싸주는데 축구공 크기라 트렁크에 딱 맞게 들어간다. 3.5kg짜리 하나로 한 달 동안 이것저것 해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포장 식품이 깻잎이나 장아찌 정도였지만 요즘은 육개장, 김치찌개, 삼계탕 등 정말 다양해졌다. 문제는 부피와 무게다. 그런데 마늘, 고추, 양파, 감자, 호박, 달걀은 어디든 있고 김치도 충분히 챙겼으니 소금, 진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고추장, 쌈장(또는 찌개용 된장), 액젓 같은 양념만 있으면 된다. 특히 액젓은 김치 떨어졌을 때 아무거나 사다 무쳐 먹거나 국 끓일 때 좋다.

우리는 소주와 라면을 충분히 챙긴다. 소주는 1인당 면세 한도가 2ℓ이므로 1.8ℓ 페트병과 200mL 종이팩을 각각 두 개씩, 도수 높은 빨간색으로 준비한다. 소주는 아껴야 하니 한식에는 소주, 현지식에는 보드카를 마신다. 보드카는 소주 맛과 가장 비슷하고 여기보다 훨씬 싸니 실컷 ‘즐긴다’. 라면은 종류별로 섞어 준비하고(대용량 라면 수프만 사서 현지 라면에 넣어 먹는다는 사람도 있다) 분말 짜장과 카레, 미역, 김, 황태 채처럼 가벼운 식재료도 챙긴다. 음식 짐은 어차피 점점 줄어든다.

그쪽에 갔으면 그쪽 것을 먹어야지 왜 한국 식품을 바리바리 싸가냐고 타박할지 모르지만, 일주일 넘어가면 그런 소리가 싹 들어간다. 노천식당에서 신기해가며 현지음식 먹는 게 좋을 때도 있고 숙소에서 차분하게 속 편해지는 우리 음식 챙겨 먹는 게 좋을 때도 있다. 한 달이면 말 그대로 ‘생활’이라 내내 축제와 파티일 수는 없다. 우리 부부는 첫 일 주일 정도는 현지식으로 먹다가 한식을 한번 먹고 나면 그때부터 완전히 무너져 우리 음식을 자주 찾게 된다.

우리 부부의 준비물 목록이다. 사람마다 이곳에서의 생활방식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해외에서 한 달 동안 필요한 물건도 같을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사진 박헌정]

우리 부부의 준비물 목록이다. 사람마다 이곳에서의 생활방식이 제각기 다른 것처럼 해외에서 한 달 동안 필요한 물건도 같을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통해 자기 스타일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사진 박헌정]

경험상 굳이 필요 없는 것은 드라이어, 손전등, 사발면, 햇반이고(각자 판단하시길) 쌀, 세면도구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하루 이틀 쓸 만큼만 가져간다. 무겁기도 하고, 현지에서 장 보는 재미도 있다.

이 정도면 집을 한 채 옮기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코노미석 무료 수하물 기준인 23kg 트렁크 두 개에 충분히 들어간다. 여의치 않으면 옷 종류는 가벼운 천 가방에 넣어 기내수하물로 가져가도 된다. 책은 무거우니 무제한으로 읽을 수 있는 스마트폰 앱(유료)을 깔면 좋다. 사실 대부분의 짐은 이미 스마트폰 속에 다 들어있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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