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골프] "JP 골프 카터 운전 솜씨 소문 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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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1993년 5월,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에서 국제의원연맹(IPU)총회가 있었다. JP는 당시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그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으로서 당을 대표하여 키노트 스피치를 하기 위하여 사무총장 박준병 의원과 조용직 의원, 그리고 실무 사무요원들을 대동하고 그 총회에 참석했다.

회기는 3일간이었으나 JP 일행은 각국의 대표들과 접촉하느라 매우 바쁜 일정을 보내고 귀국길에 영국 런던을 방문, 이홍구 주영대사와 오랜만에 따뜻한 우정의 포옹을 했다.

다음날 이 대사의 주선으로 명문 코스로 알려진 Coomb Hill cc에서 골프를 즐겼는데 그 때의 웃겼던 일화를 JP는 소개했다.

간밤에 내린 비가 잔디를 흠뻑 적셔 플레이 하기에 그리 좋지 않았지만 자연 지형을 잘 이용하여 설계된 코스는 마드리드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국적인 분위기도 기분을 돋웠다.

잠깐 햇볕이 나왔다 흐리고 다시 환해지는 일이 반복되는 날씨였는데 카트를 준비해주던 캐디가 "Good die"하고 인사를 하기에 JP가 웃으면서 "잘 죽으라는데…"라며 농을 걸었다. 그랬더니 이 대사가 "Good day를 그렇게 발음한 것이지요. 영국 사람들은 'DAY' 발음을 '다이'라고 하지 않습니까?"하면서 모두 껄껄거렸다.

JP 일행은 카트 두 대에 분승했는데 JP와 이 대사가 한대에, 박준병 의원과 조용직 의원이 다른 한대에 타고 이동해 티업을 했다. 티그라운드 옆에 클럽 챔피언십 상품으로 내놓은 일본 도요타 승용차 두 대가 전시되어 있었다. 멀리 영국에서도 일본의 상혼은 왕성했다.

"박 의원은 운전면허 없는 모양이구려"

3홀쯤 갔을 때 '사건'이 터졌다. 티샷을 마치고 꽤 경사가 심한 언덕 내리막 길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사람 살려"하는 절박한 비명이 들리는 게 아닌가? 뒤를 돌아다보니 따라 내려오던 뒷 조 카트가 빗물에 미끄러워 진 언덕을 뺑뺑돌면서 뒹굴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 카트는 박 의원이 운전하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있던 조 의원이 진흙길에 내동댕이 쳐져 흙투성이가 된 채 엎드려 있었다. 비명은 조 의원이 나가 떨어지면서 지른 것이었고, 박 의원은 카트의 핸들을 꼭 잡고 엎드린 채 빙빙돌며 미끄러져 내려왔다. 다행히 두 의원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대사와 JP는 카트를 멈춘 채 바라보고만 있을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해프닝은 또 있었다. 그 다음 홀로 가는 도중에 크릭이 있어서 카트가 겨우 건너 갈 정도의 휀스가 없는 다리가 있었는데 거기서 또 비명이 들렸다. 놀라서 돌아보니 박, 조 두 의원 카트의 오른쪽 앞의 바퀴가(조 의원이 앉아있는 쪽) 다리 난간에걸쳐 곤두박질 할 듯이 기울진 것. 조 의원이 놀라서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급기야 조 의원은 박 의원이 운전하는 카트는 탈 수 없다고 내려 버렸다. 그리고는 "육군 대장 출신이라 운전 꽤나 하는 줄 알고 탔었는데 이건 정말 사람 죽이겠네"하고 기가 막힌다는 듯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래서 JP가 "박 의원은 운전면허가 없는 모양이구려"했더니 쓴 웃음을 지으면서 "오늘 생전 처음 핸들을 잡아보았다"고 했다.

그 얘길 듣는 순간 모두 박장대소했다. 결국 그 카트는 이 대사가 운전하게 되었고 박 의원은 JP가 운전하는 카트로 옮겨 타고 골프를 마쳤다.직접 운전하기를 즐기는 JP의 카터 운전솜씨는 안전하기로 소문나 있다.

골프 카트는 조그맣고 간단한 것 같으니까 "그 까짓 것"하면서 아무나 손쉽게 운전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고 몰고 다니다가 골프장 안의 연못에 빠져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잦았다. 브레이크를 밟아야할 때 액셀레이터를 밟아서 패스웨이 옆의 가드레일에 부딛쳐 카트는 망가지고 운전자는 다리나 어깨에 부상을 당하는 불상사도 적지않았다.

요즘에는 골프장도 금연을 요구하고 있지만 한때 JP는 헤비 스모커였다. 하루에 네 갑을 피웠으니 80개비를 물고 다닌 것인데 잠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온종일 담배를 물고 있는 셈이었다.

"1978년 11월 어느 날, 친구들과 저녁을 같이하고 있었는데 입안에 돌이 뒹굴어 다니는 것 같아서 뱉어보니 윗니 하나가 부러져서 음식물과 함께 입안을 굴러다니고 있었던 거예요. 치과에 갔더니 당장 담배를 끊으라는 것이었어요. 왜냐하면 이가 부러지는데도 통증하나 없었으니 이는 니코틴이 마취제 역할을 할 정도로 입안이 엉망이라는 것이었어요."

JP는 그 날로 담배를 끊고 한 달 동안을 통원하면서 이를 손질했다. 지난날 하루에 80개비를 피울때는 골프를 하면서도 줄 곧 담배를 물고 클럽을 휘둘렀다. 아니 식탁에서도 물었다 놨다 했을 정도다. 차 안에서도 담배 연기가 매울 정도로 피웠는데 담배 피우지 않는 운전기사를 26년이나 데리고 다녔건만 그가 어떻게 그 매운 차안의 담배연기를 참았는지 모를 일이다.

"오히려 담배를 끊은 후로는 흡연자를 내 차에 태우지 않고 있으니 대단한 이기주의자가 된 셈이지요."

"한때 담배 물고 클럽 휘둘러"

지난 여름 레이크사이드 CC에 갔더니 페어웨이 옆에 현수막이 게양되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경기 중에는 담배를 삼가해 주십시오'라고 쓰여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앞에 서있는 골퍼 한 사람이 그 현수막을 뻔히 보면서 담배를 뻐끔뻐끔 빨고 있었으니 그 경고는 아무 효력이 없는 셈이었다.

"골프를 즐길 수 있는 정도의 지성인이면서도 티 그라운드는 물론이고, 페어웨이를 걸어가면서 혹은 카트를 몰고가면서 흡연을 예사로 하는가 하면,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도 가책 하나 받지않는 에티켓 부재인들이 아직도 적지 않은 것을 볼때 역시 서글픈 마음 금 할 수 없어요. 더욱이 골프는 자기 자신의 도덕성과도 겨루는 경기 아닙니까?"

담배에 얽힌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작고한 이낙선 전 상공장관은 당시 수출입국을 위해 대단한 추진력을 가지고 견인차 역할을 효과적으 해내던 주무장관이었다. 그는 JP 못지않은 헤비 스모커였을 뿐만 아니라 틈만 있으면 골프를 즐기는 매니아이기도 했다. JP와는 늘 물고, 치고, 뛰곤 했다.

그런 그가 폐암을 선고 받았다. 서울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주치의 말이 "3 ̄6개월 잔명입니다. 본인에게는 알리지 않았지만 부인에게는 알려드렸습니다" 라고 하는 것 아닌가?

그 사실을 알고 놀랐지만 정작 더 놀란 건 일주일쯤 지났을 때다. "병석을 찾았더니 침대위에 앉아서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는 것 아닙니까? '이 무슨 짓이요'하고 꾸짖었더니 이 사람(부인)이 울면서 하는 말이 '6개월 남은 운명이라니 차라리 죽을 때까지 계속 피우다 가겠다'고 했다는 것 아닙니까? '담배 피워도 6개월, 안 피워도 6개월이라면 좋아하는 담배 피우다 가는거지요' 하며 웃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선 합니다."

그는 진단대로 반 년 더 못살고 곁을 떠났다. 아마 저승에서도 줄 곧 담배 물고 골프를 즐기고 있을 것이라며 JP는 허허롭게 웃었다.

JP는 60 ̄70년대에 홍콩에서나 필리핀 마닐라에서 골프를 한 적이 있었다. 두 곳 모두 인상이 좋지 않았지만 그것은 클럽을 메고 따라다니는 맨 발의 캐디들이 거침없이 담배나 성냥을 달라는 것 때문이었다. 그래서 "예이끼 고얀 놈 같으니라고"라고 나무라면 " It's OK"하고는 시치미를 딱 떼던 그들, 지금도 그 같은 캐디들이 있는지 궁금하다고.<계속>

이석호<기자'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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