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있는이야기마을] 누렁이의 최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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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삼시 세끼 꼬박꼬박 먹으면서, 넷이서 하나 있는 누렁이 밥도 제때 못챙겨주느냐."

아버지는 직장 생활을 하시면서 취미로 개를 키우셨다. 매년 어린 강아지를 시골에 있는 큰집에서 분양 받아와 정성껏 키우셨다. 어느 정도 자라면 다시 시골로 보내셨다. 왜 한 마리를 꾸준히 키우지 않으시냐고 여쭤보면 개가 커서 짖고 그러면 도시 생활에 민폐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란다. 어린 마음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들 만하면 헤어지는 누렁이(우리집 온 개들은 모두 누렁이라 칭한다)들과의 헤어짐이 매년 아쉬웠다.

그해에도 어김없이 우리집 네 번째 누렁이가 고향으로 돌아갈 시간이 돼 막내인 나는 슬픔에 잠겼다. 아버지는 더욱 정성으로 누렁이를 먹이고 씻기셨다. 이번에는 꼭 나도 데려가 달라고 울고불고한 끝에 아버지와 나, 그리고 누렁이는 귀향길에 올랐다.

시골에 도착하니 사촌형들이랑 놀 생각에 섭섭함은 이미 잊은 지 오래됐고, 아버지는 고향 친구분들이랑 술 한잔 하신다며 집을 나가셨다. 나는 형들과 축구를 하다 개울에서 게나 잡자는 큰형 말에 발길을 돌렸다. 개울가에 도착했는데 거기 동네 어른들 틈에 섞여 뭔가 하시는 아버지 모습이 보였다.

"어, 아버지다. 아버지-."

반가운 김에 내가 이렇게 소리치자 큰형이 대뜸 목덜미를 채잡았다.

"야, 부르지 마. 애들은 못 오게 하라 그랬단 말이야."

"뭐하시는데?"

"오늘 개 잡는 날이잖아."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하는 내게 사촌 형은 충격적인 얘기를 해줬다. 매년 여름 개 잡는 날이 되면 작은아버지(우리 아버지)가 오셔서 개울가에서 동네 어른들과 개를 잡아 먹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잡는 개가 우리 누렁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경악할 일이었다. 그 자상하신 아버지 얼굴에 누렁이를 잡는 아버지의 험악한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됐다.

다음날 아버지와 난 또 한 마리의 새끼 누렁이를 안고 서울로 올라왔다. 그 후로 난 누렁이가 어느 정도 크면 몰래 풀어 주었다. 아버지는 두 번이나 다 키운 개를 잃어버린 뒤 개도둑 때문에 더는 못 키우겠다며 오랜 취미 생활을 청산하셨다. 나는 중학생이 돼서야 사촌 형이 개 잡는 날이라고 한 그날이 '복날'이란 걸 알았다.

지금껏 난 복날에 삼계탕만 먹는다. 가끔 "보신탕도 못 먹는다"고 놀리는 친구가 있으면 옛날 아버지와 누렁이 얘기를 들려준다.

하태욱(40.회사원.안산시 본오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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