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연 "판사→靑비서관→법제처장, 출세 아니고 죄책감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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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연 법제처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김형연 법제처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김형연(53) 법제처장이 4일 법제처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임명 과정의 적절성을 비판한 야당 의원들에 대해 "법제처장이 된 것을 출세라 생각한 적이 없다"며 "사법부 독립을 위해 일했기에 죄책감도 사실 별로 없다"고 말했다.

2017년 5월 인천지법 부장판사에서 사직한 다음날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서 사직하고 11일 뒤 법제처장으로 임명된 것을 두고 야당 의원들이 "사법부 독립을 흔드는 전례 없는 코드 출세"라 비판하자 "출세를 한 적이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청와대 비서관 직행 

김 처장은 양승태 대법원 시절 양 전 대법원장을 비판한 법원 내 진보 성향의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 연구회 소속 간사로 활동하며 사법부 독립을 주장했었다.

김형연 법제처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김형연 법제처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때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비서관으로 직행하며 법원 내 판사들은 물론 자신이 속했던 국제인권법 연구회 소속 판사들에게도 비판을 받았었다.

판사를 그만둔 다음 날 청와대로 직행한 그 자체가 사법부의 독립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 때문이다.

김 처장의 청와대 후임 비서관으로 같은 국제인권법 연구회 소속 김영식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임명되며 판사들의 코드 출세 논란이 또 한번 불거진 바 있다. 김 전 부장판사 역시 법원을 그만둔 지 3개월 만에 청와대로 직행했다.

지난 5월 법무비서관에 임명된 김영식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지난 5월 법무비서관에 임명된 김영식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현직 판사들 "김 처장 답변에 헛웃음만 나와" 

이날 김 처장의 답변을 전해 들은 한 지방법원의 현직 부장판사는 "말문이 막히고 헛웃음만 나온다. 법제처장으로 간 것이 출세가 아니면 도대체 어떤 것이 출세냐"며 "자신이 맡은 공직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내려와야 한다"고 비판했다.

재경지법의 한 현직 판사도 "지금 그분이 하는 일이 사법부의 독립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김 처장의 임명 과정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주광덕 자유한국장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형연 법제처장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주광덕 자유한국장 의원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김형연 법제처장에게 질의를 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김 처장이 아닌 이강섭 법제차장을 상대로 "김 처장은 2017년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김영식 비서관은 2018년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를 맡았다"며 "이런 분을 상사로 모시게 된 기분이 어떻습니까"라고 질의했다.

이에 이 차장이 아닌 김 처장이 답변하려 하자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차장에 대한 질문에 처장이 답변하려 한다"며 "청와대 출신이고 대통령의 측근이 처장이라 이렇게 오만방자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野의원 "청 비서관→법제처장 유신 때 있던 일" 

장 의원은 청와대 비서관이 법제처장으로 직행한 사례는 "과거 유신과 전두환 정부 때밖에 없었다"며 김 처장을 질타하기도 했다.

이날 법제처 국정감사에서도 조국(54) 법무부 장관의 수사를 둘러싸고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이어졌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출근을 위해 4일 오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법제처 국감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조국 장관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뉴스1]

조국 법무부 장관이 출근을 위해 4일 오전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나오고 있다. 이날 법제처 국감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조국 장관 관련 질문이 쏟아졌다. [뉴스1]

사실상 전 일가가 검찰 수사를 받고있는 조 장관이 "직무를 유지하는 것의 이해충돌 가능성이 없느냐"는 질문에 김 처장은 "제가 답변드릴 내용이 아니다"며 다른 의원의 질의에도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이날 여당 의원들도 김 처장에게 "법제처가 청와대의 거수기가 돼선 안된다"며 김 처장에게 '법제처의 독립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與의원 "법제처, 청와대 거수기 되면 안 돼"

더불어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법제처는 정부의 최고 권위를 지닌 유권 해석기관으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김 처장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일한 그런 기개를 갖고 일을 해야 한다. 야당 의원의 지적을 허투루 듣지 말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판사 출신으로 법률의 전문성을 갖췄고 청와대 비서관으로 근무하며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공유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무소속인 박지원 의원은 김 처장에게 이명박 정부 당시 '미스터 쓴소리'로 불리며 법제처의 위상과 독립성을 높였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언급하며 "이 전 처장처럼 바르게 해야 한다. 김 처장이 거친 과거 경력 때문에 북한은 우리민족끼리,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식구끼리 한다는 평가가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2017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모습. [김경록 기자]

2017년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던 이석연 전 법제처장의 모습. [김경록 기자]

이석연 전 법제처장 "김형연 임명, 참 씁쓸"

박 의원이 언급한 이 전 법제처장은 지난 5월 김 처장이 임명된 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법제처장은 청와대 비서관을 마친 뒤 갈 자리가 아니다. 참 씁쓸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처장은 "김 처장이 판사에서 청와대로 갈 때도 비판을 받았는데 다시 법제처장으로 온 것은 법제처의 중립성과 공정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했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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