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의 삶 통해「구도의 길」묘사|17년 떠돌이 백금남씨의 장편소설『십우도』|불심의 깨달음 과정을 10단계로 구성|소와 도살을 형상화 인간의 본질탐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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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처승을 부모로 두어 산사에서 나고 자라다 25세 때부터 17년간 떠돌이로 날품을 팔아온 백금남씨(42)가 본격 구도장편 소설『십우도』(고려원 간)를 펴내 주목을 끌고있다.
작품 평에 인색하기로 소문난 작가 이청준씨까지도『한 개인의 정신적 발전과정을 불교적 관점으로 추적한 근래 보기 드문 역작』이란 호평을 하고 있는『십우도』는 70년대 말 김성동씨의『만다라』에 이어 꼭 10년만에 본격구도 소설 선풍을 일으킬 것 같다.
십우도란 불교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을 자기의 본심인 소를 찾는다는 제1「심우」에서 중생제도를 위해 길거리로 나선다는 제10「입단수수」까지 10단계로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여기서 소는 진실한 자아, 나아가 사물의 본질과 같은 것이다.
소설『십우도』는 심오한 관념 덩어리인 십우도 사상을 잘게잘게 부숴 백정 주인공의 삶을 통해 쉽게 형상화시키고 있다. 한말에서 일제치하를 거쳐 해방직후 까지를 배경으로 한 『십우도』는 사회적 멸시와 몰이해 속에서 불교적'구도의 길을 살아가는 백정 5대의 인생여정을 주인공 정산우의 인식세계를 중심으로 밀도 있게 그리고 있다.
소경 백정이었던 증조부, 그로부터 시작된 불교와의 인연, 어린 시절 주인공에게 도살의 구도적 의미를 일깨워준 할아버지, 그리고 첫 도살에 실패하여 결국 죽음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 그 액땜으로 마을사람들에 의해 절로 보내지는 주인공….이러한 백정일가의 신념은 소를 살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사나리(소)가 살의를 느끼지 못하게 눈을 가리지도 않은 채 단 일격에 죽여 극락으로 보내는 것이다.
사회적 억압구조를 피부로 느끼고 있던 산우는 해방 후 산사를 내려와 좌익운동에 가담하나 곧 탈퇴, 백정의 길을 걷는다. 이러한 산우가 소의 첫 도살에 실패, 산으로 도망간 소를 잡으려고 산 속을 헤매게 되고 여기에 조상들의 모습과 구도승 서문과의 만남 등이 서정적으로 오버랩 된다.
결국 산우는 소가 바로 자신이며 소를 죽이는 것은 자기 안의 비본체를 극복하여 본체를 찾는 행위임을 깨닫는 것이『십우도』의 기둥 줄거리다.
『전생의 업인지, 한이 많아 그런지 본질에 대한 떨칠 수 없는 그리움이 15년간이나 이 소설에 매달리게 했습니다. 이제 이 소설의 출간으로 그런 업이나 한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한국 혼을 탐구하는 작업에 들어갔으면 합니다.』
산사에서 내려와 공사장 잡역부로 떠돌아다니면서도 자신의 본심을 지키고 깨닫기 위해 이 소설에 매달려왔다는 백씨는 중편『십우도』로 85년 삼성 도의문학 저작상을 수상했다. 이번『십우도』는『심우도』를 개작, 장편화 한 것이다.
대어와 달아난 소의 포획이라는 비슷한 얼개로『십우도』를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와 비교한 문학평론가 김선학씨는『인간의지 승리에 도취돼 깊은 잠에 빠져드는「노인과 바다」의 산티아고 노인과 달리 산우는 다시 소를 몰고 중생제도를 위해 산을 내려옴으로써 진여를 체득한 경지를 향하고 있다』고 평했다.<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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