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배명복칼럼

중동 민주화의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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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동이 또다시 전운(戰雲)에 휩싸였다.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레바논을 폭격하고, 이스라엘군 탱크와 장갑차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를 유린하고 있다. 레바논의 시아파 민병조직인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향해 로켓을 발사하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는 수류탄과 소총으로 이스라엘군에 맞서고 있다. 민간인 사상자가 급증하면서 엑소더스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언젠가 본 듯한 낯익은 장면이다.

책임의 근원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대책 없는 논쟁에는 어차피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물론 이번 사태만 놓고 보면 빌미를 제공한 쪽은 하마스와 헤즈볼라다. 하마스는 이스라엘 병사 1명을 납치했고, 헤즈볼라는 2명을 납치했다. 문제는 이스라엘 정부의 대응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9월 철수한 가자지구에 다시 들어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완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헤즈볼라의 본거지가 있는 레바논에 대해서는 육.해.공 전면공격을 퍼붓고 있다. 누가 보더라도 비(非)대칭적 과잉대응이다. 확전을 막으려면 하마스와 헤즈볼라는 물론이고, 이스라엘 쪽에도 자제를 촉구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미국은 구경만 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배후로 알려진 시리아와 이란을 비난하면서도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자위권의 행사'라고 감싸고 있다.

며칠 전 미 ABC 방송에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왜 중동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느냐"는 비판에 "민주주의를 이행하는 쪽으로 중동정책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0년 동안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미국은 중동에서 안정과 안보를 맞바꾸고, 민주주의의 부재(不在)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그 결과 나타난 것은 극단주의자들의 득세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민주주의의 확산을 통해 극단주의를 뿌리 뽑고, 이를 통해 안전과 평화를 확보하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했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스라엘은 부시 행정부의 중동 민주화 정책에 편승, 미국의 방조 아래 이번 사태에 의도적으로 과잉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부정하고, 테러를 부추기는 이슬람 과격 무장세력을 이번 기회에 발본색원(拔本塞源)함으로써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동평화의 선결 조건이라는 공감대가 두 나라 사이에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옛 소련의 반체제 인사로 이스라엘 정부 각료를 지낸 나탄 샤란스키의 '폭정과 테러의 종식을 통한 중동평화론'이 현실로 구체화한 셈이다.

딜레마는 여기서 출발한다. 하마스는 1월 팔레스타인 주민의 압도적 지지로 집권했다. 자유선거를 통해 132석 중 74석을 획득했다. 헤즈볼라도 지난해 민주적 투표 절차를 거쳐 레바논 연정에 참여하고 있다. 2명의 각료까지 배출했다. 둘 다 무장세력이고, 테러를 무기로 활용하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선택에 의해 국정에 참여하고 있는 엄연한 정치세력이다. 결과가 마음에 안 든다고 민의를 무시한다면 민주주의가 설 땅은 없다.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이중성이 민주주의에 장애 요인인 것은 분명하다. 이라크를 봐도 알 수 있다. 자유선거를 통해 합법적 정부가 출범했지만 평화는커녕 혼란만 커지고 있다. 이라크의 시아파와 수니파 정치세력이 각각 별도의 무장세력과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무력화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는 원한은 다시 보복 테러의 악순환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새로운 테러 단체가 등장함으로써 중동평화의 퍼즐 맞추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도 있다. 중동의 민주화는 힘으로 어느 한쪽을 배제한다고 해서 이뤄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 물적(物的) 토대를 갖출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지원하는 데서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명복 논설위원 겸 순회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