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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60m 공기청정탑으로 미세먼지 타파? 서울에만 2000만개 필요

중앙일보

입력

중국 산시 성 시안에 세워진 공기정화탑(스모그 정화 타워). [연합뉴스]

중국 산시 성 시안에 세워진 공기정화탑(스모그 정화 타워). [연합뉴스]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가을, 실내 공기는 청정기를 사용하는데 바깥 공기는 정화할 수 없을까?

중국 시안 공기 청정탑도 #서울 미세먼지엔 역부족 #환경부 '한국형 정화기'사업 #이론적으로 "효과 없음" 판정

중국 시안에는 60m 높이의 ‘스모그 제거 탑’이 있다.
축구장 절반 높이의 유리온실로 공기가 들어가, 필터가 촘촘한 탑을 통과하면서 먼지가 제거되는 원리다. 탑 1개 설치에 22억원 이상 들었다.

이 공기정화 탑으로 서울 하늘도 정화할 수 있을까?
대기시뮬레이션 업체 볼트시뮬레이션이 한국 대기환경학회지 6월호에 게재한'외부에서 도시공간으로 유입된 고농도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공기정화 탑과 차량부착 정화장치의 효과 추정' 논문에 따르면, 서울에만 시안에 설치한 정화탑이 최소 27만대, 많게는 2000만대가 필요하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해결책이다.

바람타고 들어오는 미세먼지, 바람 타고 거른다

지난 3월 전국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은 날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강 방면을 바라본 모습. 한강 건너편의 아파트 단지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가 뿌옇다. [연합뉴스]

지난 3월 전국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농도가 치솟은 날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한강 방면을 바라본 모습. 한강 건너편의 아파트 단지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기가 뿌옇다. [연합뉴스]

'실외 공기정화'는 아직 보편화된 기술은 아니다.
한정된 공간에서 공기를 흡입해 정화하는 실내 공기청정기와는 다르게, 실외 공기정화는 설치된 필터를 지나가는 공기의 양만큼 미세먼지를 정화할 수 있다.

연구팀은 ‘고농도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로 유입되는 상황’에서 공기정화탑이 서울시 위의 공기층 전체 평균 농도를 낮추는 효과를 계산했다.
고농도 미세먼지가 유입되는 상황에서는 바람이 많이 불수록 미세먼지가 많이 유입된다.
또, 필터를 통과하는 공기가 많을 수록 미세먼지도 많이 정화된다.

시안 스모그 제거탑은 하루에 500만㎥의 공기를 처리할 수 있고, 필터 효율은 80%다.
처리하는 공기에 포함된 미세먼지 중 80%를 걸러낼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대당 1초에 46㎥만큼의 공기를 정화할 수 있는 성능이다.

서울시 '완벽 정화'는 스모그탑 2000만대 필요

 네덜란드 로테르담 단 로세하르데 스튜디오 뒤에 설치된 스모그 프리 타워.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조건에서는 타워에서 10m 떨어진 곳까지 미세먼지(PM10)는 45%, 초미세먼지(PM2.5)는 25%가량 줄어들었다. 타워 주변의 바람이 강해질수록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눈에 띄게 줄었다. 천권필 기자

네덜란드 로테르담 단 로세하르데 스튜디오 뒤에 설치된 스모그 프리 타워. 바람이 거의 불지 않는 조건에서는 타워에서 10m 떨어진 곳까지 미세먼지(PM10)는 45%, 초미세먼지(PM2.5)는 25%가량 줄어들었다. 타워 주변의 바람이 강해질수록 미세먼지 저감 효과는 눈에 띄게 줄었다. 천권필 기자

공기를 타고 유입되는 먼지를 10분의 1로 줄이려면, 유입되는 공기양의 10배를 처리할 만큼 필터를 많이 설치해야 한다.
시안 스모그 제거탑 성능을 기준으로, 외부에서 발생한 고농도 미세먼지가 서울로 유입될 때 효과적으로 먼지를 제거해 10분의 1 수준으로 농도를 낮추려면 낮 시간에는 스모그제거 탑 2000만대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민 1명당 60m 높이 스모그제거 탑 2개씩 할당해도 모자란 수치다.
바람이 약한 밤에도 100만대가 필요하다.

유입 미세먼지를 10분의 1이 아니라 10%만 제거하려고 해도 27만대, 밤에는 1만 6000대가 필요하다.
구마다 60m 높이 탑을 1만대씩 설치해도 낮 동안 미세먼지를 10%도 줄이지 못한다.

환경부 '한국형 정화기' 사업은? 서울에 1만대 설치해도 효과 없어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미세먼지 대책 브리핑에서 고농도 미세먼지 긴급조치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 앞서 안경을 매만지고 있다. 당시 정부는 공기정화탑과 인공강우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조명래 환경부 장관이 지난 3월 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미세먼지 대책 브리핑에서 고농도 미세먼지 긴급조치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 앞서 안경을 매만지고 있다. 당시 정부는 공기정화탑과 인공강우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뉴스1]

환경부는 지난 5월부터 ‘한국형 정화기’ 사업 계획을 공모 중이다.
학교‧병원‧건물 옥상 등 도심 유휴 공간에 ‘실외 공기청정기’를 설치하겠다는 계획이다.
한 시간에 40만㎥ 이상 처리가 가능한 소형 공기청정기라는 조건을 달았다.
시안의 정화탑과 같은 성능의 청정기를 전국 곳곳 야외에 설치하는 셈이다.

한국형 정화기 사업의 효과를 가늠해보기 위해, 서울시에 시안 정화탑 1만대를 설치했다고 가정했을 때 여러 가지 상황에서의 미세먼지 제거 효과도 따져봤다.

도시 위의 공기층에서 미세먼지는 낮에 높이 확산되고, 밤에는 비교적 낮은 층에 모이는 경향이 있다.
먼지가 낮은 층에 모인 상태에서 바람이 초속 0.5m로 약하게 부는 ‘야간 약풍’ 상태에서 미세먼지 정화 효과가 가장 좋았다.
이때는 유입 농도의 21.6%를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보통 풍속으로 바람이 불 때는 유입되는 먼지의 0.04%밖에 제거하지 못했다. 1만개로도 평소에는 거의 효과가 없는 셈이다.

자동차 20만대에 직접 청정기 부착, 미세먼지 39% 제거

지난 3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날 폐쇄된 청와대 직원 주차장. [연합뉴스]

지난 3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된 날 폐쇄된 청와대 직원 주차장. [연합뉴스]

그럼 탑을 세우지 않고, 돌아다니는 차들에 정화기를 부착하면 어떨까?
공기정화탑과 같은 성능의 정화장치를 1㎡ 크기로 차량에 설치한다고 가정해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서울시 전체 차량등록대수 311만여 대 중 영업용 차량은 6.4%, 약 20만대다.
이들 차량이 평균 시속 24.2㎞, 초속 6.72m로 움직인다고 가정할 때, 가장 제거가 잘 되는 ‘야간 약풍’ 조건에서는 유입 미세먼지 중 39%를 제거할 수 있었다.
멈춰있는 ‘스모그 탑’ 1만대보다 1.8배 나은 효과다.
지면에 가깝기 때문에 먼지가 높이 확산되는 낮에는 거의 효과가 없었지만, 밤 시간대 보통풍속에서 정화탑이 미세먼지를 5.9% 제거하는 반면 차량 정화기는 12.7% 제거했다. 2배가 넘는 효과다.

연구팀은 "실제 상황을 크게 단순화시킨 '모델 시뮬레이션' 연구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지만, 최근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논의되고 있는 '공기정화 탑'과 '차량부착 정화장치'의 효용성을 정량화한 시도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논문을 쓴 볼트시뮬레이션 김석철 대표는 "현재 실내 공기청정기는 한 번 정화된 공기가 한 곳에 머무는 용도고, (실외에서) 지나다니는 공기를 깨끗하게 하는 건 몇몇 해외 사례 빼고는 전례가 없다"고 밝혔다.

집에 설치하는 공기청정기 하나도 청정 성능을 따져가며 사는데, 미세먼지 대책으로 '실외 공기청정기'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정량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 실험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실외 공기청정이 효과가 있으려면 굉장히 많이 설치하든가, 굉장히 성능이 좋은 청정기가 필요하다"며 "'실외 공기청정'은 기술개발이 우선 더 필요하고, 싸게 대량생산까지 가능해야 실제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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