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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선 핵심전략이었는데···아프간전 종식 깬 진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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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18년간 이어지고 있는 테러조직 탈레반과의 전쟁 종식은 자신의 재선에 가장 좋은 전략이었다. 지난하게 계속되고 있는 크고 작은 전투에서 수많은 미군이 사망하고,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이 들어가면서 미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전쟁'으로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과의 평화협정에 드라이브를 걸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평화협정 취소 소식을 알렸다. 또 8일 캠프 데이비드에서 예정돼 있던 탈레반 및 아프간 지도자들과의 비밀회동도 취소했다. 그는 지난 5일 아프간 카불에서 탈레반이 자행한 자살폭탄테러로 인한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탈레반과의 협상에 대한 미 행정부 내 갈등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중론이다.

폼페이오·볼턴도 "평화협정안 반대"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밀회동 및 평화협정 취소가 미 행정부 내 의견 마찰을 그대로 드러냈다고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 내 일부 각료와 의원은 미군의 아프간 철수가 시기상조이며, 탈레반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협정 타결에 반대하고 있다. '트럼프의 오른팔'로 꼽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평화협정 서명에 반대하고 있으며,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협상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측근들이 잇달아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좌절감이 커진 상태였다. 또 평화협정 초안 발표 직후 외교가에서 단체로 반대 성명을 내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은 많은 공화당 동료들로부터도 제기되는 부정적 평가를 두려워하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탈레반과의 협정은 폭력의 감소를 요구했지, 완전한 휴전을 요구하진 않았다"고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정돼 있던 비밀회동을 취소한 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8일 최근 탈레반으로부터 되찾은 왈두즈 지역을 순찰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정돼 있던 비밀회동을 취소한 뒤,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8일 최근 탈레반으로부터 되찾은 왈두즈 지역을 순찰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특히, 지난 5일 카불 미대사관 인근에서 발생한 탈레반의 자살폭탄테러는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 지도자에게 캠프 데이비드 초청 의사를 밝힌 직후였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취소된 비밀회동, 왜 캠프 데이비드였나  

트럼프 대통령이 탈레반 및 아프간 지도자들과 비밀회동을 하려고 했던 장소는 미국 메릴랜드 주에 위치한 미 대통령의 전용 별장 '캠프 데이비드'였다. 이곳은 지난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당시 국가 지도자들이 모여 대책을 논의하던 곳이다. 9·11 테러 18주년이 되기 이틀 전, 테러조직 탈레반의 수장을 캠프 데이비드로 초대하는 무리수를 둔 것이다. 탈레반은 9·11 테러를 일으킨 조직은 아니지만,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또 다른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했다.

캠프데이비드 회담[지미 카터 도서관]

캠프데이비드 회담[지미 카터 도서관]

그럼에도 이를 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로 이들을 초대했던 것은 이 장소가 가진 상징성 때문으로 풀이된다. 캠프 데이비드는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30년 중동전쟁을 종식시킨 평화협정이 탄생한 곳이다. 지미 카터 당시 미 대통령이 1978년 9월 5일부터 9월 17일까지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해 평화협정의 기틀을 다졌다. 결국 1979년 3월 26월 이들은 백악관에서 평화조약을 맺었으며, 이 조약은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s)으로 불린다.

또 2000년에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해결을 위해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초대해 함께 캠프 데이비드 숲길을 걸으며, 긴장 상황을 풀려고 애쓴 장소이기도 하다.

이같은 사례처럼 트럼프 대통령도 국제분쟁의 중재자 역할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9·11 테러 기념 사흘 전에 테러조직 단체장을 초대한 것은 경솔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군 출신인 애덤 킨징어 하원의원(공화당)은 트위터에 "아직도 악행을 계속하는 테러조직 지도자들이 우리의 위대한 나라에 들어오도록 허용해선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공든 탑' 평화협정은 어디로  

이번 평화협정은 지난해부터 약 8개월간 진행됐다. 그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공을 많이 들였고, 협정 초안까지 마련될 정도로 진전돼 있었다. 미국 비즈니스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중단 선언으로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미국의 신뢰도가 떨어지고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만 커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탈레반도 8일 비밀회동 취소 공개 후 성명을 통해 "신뢰는 훼손됐고, 미국의 반(反)협상적인 태도가 전세계에 공개됐다"며 "이번 결정은 미국에 더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손실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디크 세디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 대변인이 8일 '캠프 데이비드 비밀회동'이 취소된 뒤 카불 기자간담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세디크 세디키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 대변인이 8일 '캠프 데이비드 비밀회동'이 취소된 뒤 카불 기자간담회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협정중단 선언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평화협정 종료를 묻는 질문에 "당분간 그렇다"며 "수개월 간 탈레반과 협상을 진행해온 잘메이 할릴자드 미국 특사를 소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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