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무죄 2심서 뒤집힌 안희정, 오늘 대법 어떤 판단 내릴까

중앙일보

입력

올해 2월 1일 지위 이용 비서 성폭력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2월 1일 지위 이용 비서 성폭력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서울중앙지법에서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9일 오전 10시 10분 안희정 전 충남지사(54)의 상고심을 선고한다. 안 전 지사는 자신의 수행비서 김모(34)씨에게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간음ㆍ추행한 등의 혐의로 지난해 3월 재판에 넘겨졌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8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됐지만 이듬해 2월 항소심에서 징역 3년 6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1·2심,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피해자 진술 신빙성 판단 엇갈려

1ㆍ2심의 판단 결과가 뒤집힌 것은 1ㆍ2심 재판부가 ▶위력의 행사 여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등을 완전히 다르게 봤기 때문이다.

위력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됐는가

1ㆍ2심 재판부는 모두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이 있었음은 인정했다. 성폭력 범죄에서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한다. 유형인지 무형인지는 관계없으므로 폭행ㆍ협박이 아니라 사회ㆍ경제ㆍ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위력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이런 위력이 개별 성범죄에 쓰였는지는 구체적인 상황이나 피해자와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에게 위력은 있었지만, 평소 비서실 직원들에게 이런 위력을 구체적으로 내보이지 않았고 김씨가 피해를 호소한 각 사건에서도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위력을 행사해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해야 범죄가 되는 것인데,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으므로 김씨의 성적 자기결정권 역시 침해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여성은 독자적 인격체”vs.“권력적 상하관계”

 1심은 오히려 성적 자기결정권의 관점에서 볼 때 여성은 독자적인 인격체로 자기 책임 아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고, 이런 여성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해석은 오히려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한다고 봤다. 1심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갖춘 성인 남녀 사이에 발생한 사건이고, 피해자의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곤란하게 하는 물리적인 위력이 직접 행사됐다고 볼만한 구체적인 증거는 제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7년 7월 말 안 전 지사가 처음으로 김씨에게 업무상 위력을 행사해 간음했다고 기소된 사건을 판단하며 1심 재판부는 안 전 지사의 행동이 ‘위력이 행사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결론낸다. 당시 김씨 진술에 따르면 안 전 지사는 러시아 순방 일정 직후 현지 숙소에서 김씨에게 맥주를 가지고 오라고 지시했고 김씨가 이를 갖고 가자 거절 의사를 전했음에도 수차례 김씨를 설득해 간음했다.

1심은 “피해자가 방을 나가거나 안 전 지사의 접근을 막는 손짓을 하는 등의 행동을 못 하게 할 정도로 안 전 지사가 위력적 분위기를 만들었거나 물리력을 행사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결문에 썼다. 또 김씨 진술에 따르더라도 당시 안 전 지사가 포옹한 것과 말로 설득한 것만으로는 “성인 여성의 자유의사를 제압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기에 충분할 만큼 위력의 행사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158개 여성·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올해 2월 1일 항소심 선고 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빨간색 카드를 들고 있다. 이우림 기자

158개 여성·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안희정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회원들이 올해 2월 1일 항소심 선고 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빨간색 카드를 들고 있다. 이우림 기자

반면 같은 사건을 두고 2심 재판부는 상반된 판결을 했다. 2심은 전임 수행비서 등이 ▶안 전 지사는 표정이나 분위기로 상대에게 위압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타입이고 ▶수행비서들은 안 전 지사가 원하는 것은 시급하게 그 요구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고 ▶안 전 지사가 지시하면 경중을 떠나 해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고 증언한 점을 인정했다.

수행비서들의 업무 패턴에 비춰보면 김씨가 맥주를 가지고 간 것은 업무였고, 김씨가 객실로 들어오자 수차례 설득한 것이나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젓는 김씨를 간음한 것은 위력을 행사한 것에 해당한다고 봤다. 수행비서 김씨가 권력적 상하관계에 놓여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등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 힘든 상태에 있다는 걸 안 전 지사가 알았으면서 이를 이용했다고 본 것이다. 2심은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를 포옹한 것과 소극적 저항을 하는 피해자를 설득해 간음한 것은 안 전 지사가 적극적으로 위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유일한 직접 증거, ‘피해자 진술’ 신빙성 어떻게 볼까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1ㆍ2심은 각 사건에서 거의 유일한 증거라고 볼 수 있는 김씨의 증언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판단을 했다. 1심은 성폭력 범죄 사건에서 피해자 진술로만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진술의 진실성과 정확성에 거의 의심을 할 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로 높은 증명력이 요구되고, 피해자 진술 중 일부가 신빙성이 없다고 보인다면 나머지 피해에 대한 진술도 진실할 것으로 쉽게 단정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했다. 이어 피해자에 대한 성인지 감수성적인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피고인과 피해자 관계, 평소 및 범행 전후의 언행과 태도 등 간접 사실을 고려해 정의와 형평에 근거해 증거 판단을 해야 한다고 봤다.

1심은 김씨의 피해 당시 행동 및 피해 이후 행동을 근거로 김씨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 ▶추행 피해 다음날 간음 피해를 보았다면서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 점 ▶피해 이후 안 전 지사의 아침 식사 장소를 찾으려 애쓴 점 ▶러시아 순방 귀국 직후 안 전 지사가 다녀간 미용실을 찾은 점 ▶피해 이후 제3자와 안 전 지사를 지지하는 취지의 대화를 한 점 등이 근거가 됐다.

항소심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항소심은 피해자의 대처 양상이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김씨의 행동은 성범죄 피해자의 행동으로 볼 수 없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특정하게 정형화한 성범죄 피해자의 반응만을 정상적인 태도라고 보는 편협한 관점”이라고 판결문에 썼다.

오히려 항소심 법원은 안 전 지사 진술의 신빙성에 주목했다. 항소심은 피해자의 진술이 사실상 증거로 유일할 때 피고인 진술이 믿을 수 없고 모순점이 있다면 피고인의 진술이 범죄 사실을 뒷받침하는 간접 정황이 될 수도 있다는 판례를 따랐다. 안 전 지사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안 전 지사는 김씨 폭로 이후 페이스북에 “합의에 따른 관계였다는 비서실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검찰 조사에서는 “성폭행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불륜과 간음 사실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항소심 법정에서는 “당장 밤에 비서실이 그런 입장으로 반박 성명을 내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로 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1·2심 재판부가 위력의 행사 여부 및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등에 대해 상반된 판결을 한 만큼 이날 대법원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주목된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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