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재정 지출 '약발' 떨어졌는데…'재정 중독' 심해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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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4일 오전 정부서울 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4일 오전 정부서울 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 2.4∼2.5% 달성 자체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라며 성장률 2%대 중반 수성이 어렵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인정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하반기 경제활력 보강 추가 대책’ 브리핑에서 “성장 경로 상 하방리스크가 확대돼, 7월 정부의 수정 전망치 2.4~2.5%보다 (성장률이) 낮게 나올 것 같다는 게 정부의 인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결국 막대한 재정을 쏟아붓고도 내리막을 탄 경기 흐름을 되돌려 세우지 못한 셈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내년에 513조5000억원 규모 역대급 '초슈퍼예산'을 편성하며 또다시 '재정 살포'를 예고했다.  '재정중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경기 부진과 일본 수출규제에 따른 난국 극복을 확장적 재정 운용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재정의 경기 부양 효과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재정에만 기댄 정책으로는 시장 활력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홍남기 "연내 55조 공공기관 투자도 이뤄지게 할 것"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 모두발언에서 "14개 기금의 운용계획을 변경해 1조6000억원 규모 자금으로 투자·내수를 뒷받침하겠다"며 "내년 예정된 1조원 규모 공공기관 투자도 앞당겨 연내 총 55조원의 투자가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기금과 공공기관 투자도 결국 정부가 관리·운용하는 자금으로 일종의 재정이라고 볼 수 있다.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 이후에도 풀 수 있는 나랏돈은 최대한 풀겠다는 의미다.

재정 1조 쓸 때 GDP 증가액, 2014년 8000억, 2017년 5600억 

나랏돈을 풀었을 때 돌아오는 효과는 계속해서 줄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지난 2016년 발간한 '재정지출의 분야별 경제적 효과분석 모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재정지출이 1조원 증가할 때 그해 국내총생산(GDP)에 미치는 효과는 2014년 8000억원에서 2017년 56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취업자 수는 2014년 1만2700명이 늘지만, 2017년에는 같은 나랏돈을 쓰더라도 8300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최신 통계가 부족해 지난해와 올해의 재정지출 효과를 따져볼 순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정지출 효과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무역의존도가 낮았던 과거에는 나랏돈을 풀면 그 돈이 국내 내수시장 안에서 돌았지만, 개방도가 높아진 최근에는 해외에서 상품·서비스를 사들이는 데도 나랏돈이 나가기 때문에 과거보다 재정지출의 효과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재정지출 1조원 증가가 그해 GDP에 미치는 영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재정지출 1조원 증가가 그해 GDP에 미치는 영향.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확장재정 편성하면 감세 효과 기대 못해" 

확장 재정을 편성하면 감세를 통한 경기 부양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시중에 풀기 위한 나랏돈이 늘어날수록 걷어야 하는 세금도 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확장 재정을 편성하면서도 증세는 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부터 올해까지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증대 효과를 계산하면 정부 출범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누적법(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효과 총량 합산)으로 계산한 2014~2016년 세수 효과는 12조3000억원에서 2017~2019년 24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법인세 세수 효과는 같은 기간 3조9000억원에서 8조4000억원으로, 소득세 세수 효과도 2조3000억원에서 8조6000억원으로 늘었다.

文 정부 출범 전후 3년,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효과 추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文 정부 출범 전후 3년,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효과 추정,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법인세 감세 효과 가장 큰데, 세율 높인 文 정부" 

소득세·소비세·법인세 등 세목별로 세금을 감면했을 때의 경기 부양 효과(감세 효과)는 법인세가 가장 크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17년 말 세금을 1조원 감세했을 때 국내총생산(GDP) 증가에 미치는 영향을 계산한 결과 법인세 2213억원, 소득세 2152억원, 소비세 1989억원 등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산업계는 현 정부 들어 높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낮춰야 경기 부양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2017년 세법 개정으로 22%에서 25%로 올랐다.

김천구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위원은 "지난해 법인세 수입은 70조9000억원으로 한 해 전보다 약 20% 급증했다"며 "경쟁국과 다르게 국내 법인세율은 높아져 기업 투자 여력이 줄었기 때문에 이를 완화해야 민간 투자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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