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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 감상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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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방현 기자 중앙일보 내셔널부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김방현 대전총국장

지난 28일 부산대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등을 요구하는 촛불 집회가 열렸다. 지난 23일 천안 단국대서도 집회가 열리는가 하면 공주대 총학생회는 성명을 내고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진보 정권에서 시국사건으로 대학생들이 집단 반발하기는 처음이다. 지방대까지 가세하는 것도 수십 년 만이다.

대학생은 물론 많은 국민은 조 후보자가 누구보다도 정의를 부르짖었기에 큰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의 말과 글에서는 도덕적 이상주의자의 모습마저 엿보였다. 그는 2017년 1월 “도대체 조윤선(문화계 블랙리스트 개입 혐의)은 무슨 낯으로 장관직을 유지하면서 수사를 받는 것인가?”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전문가들은 정의감이 충만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외려 부도덕해지기 쉽다고 한다. 이를 도덕적 면허 효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현 집권 세력이 웬만한 비리나 탈법은 촛불혁명이라는 ‘대업’을 핑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조씨의 위선과 의혹을 모두 비판만 하는 것은 아니다. 문 대통령과 여당 열혈 지지층은 사정이 다르다. 그들은 조국씨 의혹이 불거지자 처음에는 조금 흔들리더니 곧바로 평정심을 되찾는듯했다. “우상처럼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하다가 “그럴 리가 없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곤 각종 의혹 보도를 가짜 뉴스로 취급했다. 이는 인지부조화이론(정신승리)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믿고 있던 것과 정 반대 상황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을 모욕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팩트를 외면한다.

열혈 지지층이 상황을 수용하기 어려운 데는 증오의 감정도 작용한다. 정의롭지 못하다고 믿어온 과거 집권 세력에 대한 증오다. 그래서 지지하는 정치세력의 비리를 금방 인정하는 건 매우 고통스런 일이다. 문제는 강한 증오감은 광신(狂信)으로 흐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에서 이를 지적했다. 광신은 대화도 어렵게 한다. ‘조국 힘내세요’ 등의 글을 나르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조국 사태는 증오를 내려놓고 정의를 다시 생각케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김방현 대전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