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 온 「미내의 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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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미국 미래학자 네스비트는 미국 사회를 소재로 해 이른바 「미내의 충격」을 경고했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한 세대안에 농경사회로부터 공업사회로 옮겨가고, 그 와중에서 첨단기술의 급격한 발전을 동시에 겪어야 했던 우리 사회야말로 미내의 충격을 미국보다 수십배 더 강하게 받았다.
다만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런 충격이 일상생활에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지에 대해 모두들 둔감해 있는 것이다.
29일 오후 서울의 한전 월계 변전소에서 일어난 화재사고가 빚은 여러 가지 사대는 그런 관점에서 서울의 일부 지역에 국한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 전체에 중요한 경고와 교훈을 준다.
일개 변전소의 화재사고로 5개구 37개 동에 전력공급이 중단돼 암흑천지가 됨은 물론 상수도 가압 펌프가 멈추는 바람에 수도물이 끊겨 밥을 지어먹을 수가 없었다. 정전지역에서 교통신호가 작동되지 않아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정지는 물론 상가마저 일찌감치 문을 닫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새 현대기술에 엄청날 정도로 의존해 있다. 이들 일상적 기술이 정상가동될 때는 그 고마움을 별로 모르지만 그것이 일시 가동을 멈출 때 우리 사회가 겪어야 할 마비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둔감해 있다.
이번 사건은 아직 화재의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여서 불가항력적 불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단 정전이 된 다음 당국과 주민들이 어떻게 이에 대응했는지는 우리 사회 전체의 위기관리 능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사고의 경우 사전관리는 물론 사후에 이동 변전차의 즉각적인 동원이 있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고 이튿날에야 겨우 1대가 동원되고, 나머지 1대는 지방에서 올라와야 한다니 긴급사대에 대비한 태세의 무사 안일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정전에 대비한 각 편의시설에 대해 기능별로 별도의 대비책이 전혀 없었다는 것도 단순한 변전소 화재사고의 영향을 확산시킨 원인으로 지적돼야 한다. 엄청난 교통량의 증가로 혼란이 분명히 예상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신호등에 대한 별도의 비상 전원가동 장치가 없었다는 것도 이를 맡고 있는 행정기관으로서는 책임을 통감해야 된다.
더욱이 교통신호의 정전으로 때마침 퇴근 차량이 극도의 혼잡을 빚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통 경찰관의 충분한 동원이 이뤄지지 않아 심한 체증을 일으킨 것은 사전 예비는 물론 사후관리까지도 불비 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컴퓨터의 일반화로 정전은 컴퓨터의 작동을 마비시켜 교통신호를 비롯한 공공기관의 기능마저 마비되게 한다.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기계 문명의 이기들이 편리하면 편리할수록 그것의 기능에 이상이 발생했을 때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으로 우리 생활 자체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편의 시설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한 사전 점검과 예방대책이 완벽해야 하겠다.
당국과 시민들은 다같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스스로의 위기관리 능력을 재점검하고 미비점을 보완하는 노력을 집중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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