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확산 왜 못 막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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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이 조직범죄 소탕에 「총력전」을 선언하고 나선지가 벌써 여러 달 됐다.
신임 김태호 내무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치안질서 확립을 다짐하면서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게 상황을 개선하겠다」며 장관자리까지 걸어 약속한 8월 한달도 다 되어간다.
경찰 뿐 아니라 검찰도 나서 「국민생활 침해사범 합동수사본부」가 전국에 가동중이다.
그러나 검·경의 이 같은 다짐과 약속은 아직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은행금고 털이, 대낮현금 수송차량 탈취 등 전대 미문의 강력 사건에 이어 어제 보도된 용산역을 비롯한 귀성차표 예매장 폭력배 난동과 1백억대 매립지 강탈 청부폭력 기사는 우리 사회의 치안상태가 이미 한계를 넘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법질서와 공권력이 공공연히 무시되고 조롱까지 당하는 상황이다.
그 존재 사실자체만으로도 범죄예방의 기능을 해야할 법과 공권력이 맥을 못추고 그 자리에 주먹이 대신 들어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고」, 법보다는 주먹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듯한 세태가 확산되고 있는 느낌이다.
우리는 이 같은 상황에 대한 1차적 책임을 치안당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현재의 치안상태 개선이 어렵다는 것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범죄의 조직화·대형화·공공연화는 잘못 인식되고 있는 민주화 과정에서 야기된 아노미 상황의 단편적 현상이기도하지만 동시에 우리사회 저변에 흐르고 있는 폭력에 대한 무감각 체질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 그것이 척결의 시기를 놓칠 경우 하나의 사회구조로 자리잡을 가능성조차 엿보인다.
그것은 다름 아닌 「폭력상습화」의 경향이다.
인신매매·유흥가 폭력 등 사회 하층에서의 범죄는 말할 것도 없고 폭력은·정치판에서도, 문화계에서도, 대학사회·노사현장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추세를 극히 우려한다.
영등포 유세장의 난동소동, 미 영화직배를 둘러싼 영화계의 폭력소동 등 그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어쩌면 요즘의 각종 강력 범죄도 바로 이 같은 폭력성향의 사회적 확산에서 결과하고 있다.
폭력에의 충동과 일상화는 여러 사회적 요인의 복합된 환경에서 배태되고 증폭되어 왔다.
따라서 범죄의 예방까지 포함한 치안질서의 확립은 경찰력의 정상적 운용과 함께 이같은 여러 요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대책의 강구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도시화·산업화에 따른 사회의 변화와 사회복지, 매스미디어를 포함한 사회환경은 물론 사회 심리학적 견지에서도 폭력의 원인은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치안당국만이 아니라 가정·학교·종교·사회단체 등 전사회적 대응방안이 강구되어야만 폭력추방은 실효를 거둘 수 있으리라 본다.
그리고 그 초점은 사회 전반에 흐르고 있는 폭력 상습화의 잠재의식 내지 충동을 완화하고 씻어내는 것이라고 본다.
폭력은 결국 폭력을 부른다. 결코 문제해결의 수단이 될 수 없고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낼 뿐이다.
정부의 치안대책이 이제부터라도 가닥을 바로 잡아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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