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딸에게 父 ‘심폐소생술 포기동의’ 각서 요구한 병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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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본관.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 본관. [연합뉴스]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버지의 심폐소생술 포기동의서 서명을 어린 자녀에게서 받은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을 냈다.

21일 인권위에 따르면 환자 A씨는 지난해 6월 한 병원에 입원했다. 경찰 의뢰로 이뤄진 것으로 A씨는 다음날 우울증과 알코올 의존증으로 보호입원 환자로 전환됐다.

이 과정에서 병원 측은 중환자실이 없어 환자에게 심근경색이 오면 즉시 치료할 수 없다며 그럼에도 입원하길 원하면 심정지나 호흡곤란이 발생해 사망해도 병원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했다.

병원은 이 각서를 A씨 보호자에게 받아야 한다고 했고, A씨 모친에게 연락이 닿지 않자 미성년자인 딸에게 각서 서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A씨는 자해 위험이 있어 병원에 응급입원한 것이지만 의사 표현이 떨어지는 상태는 아니었다”며 “생명연장 포기동의서를 법적 대리인도 아닌 미성년 자녀에게 요구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자기결정권과 일반적 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아울러 인권위는 “병원은 응급상황 발생시 적절한 응급의료가 가능한 의료기관으로 이송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미성년 자녀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한 (병원 측)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며 “A씨와 자녀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고 봤다.

인권위는 해당 병원장에게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관할 구청장에게 관내 의료기관에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지도·감독을 철저히 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A씨는 병원에서 통신·면회를 못 하게 하고 외부진료를 묵살하고 진정서를 발송하지 않았다는 등의 주장도 내놓았는데, 인권위는 이 부분들은 근거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인정하지 않았다.

박광수 기자 park.kwa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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