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작가 그룹 「메타복스」4년만에 해체 29일부터 녹색갤러리서 마지막 그룹전 "「탈 모던」해결 못해 자책감" 80년대 후반 한국화단 흐름에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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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80년대 후반 한국화단의 일각을 점령하고 이른바 「탈 모던」의 기치아래 의욕적이며 조직적인 활동을 퍼오던 그룹 「메타복스(META-VOX)」가 오는 29일부터 9월7일까지 서교동 녹색갤러리에서 열리는 제5회 그룹전을 끝으로 해체된다.
「80년대 미술의 한 단서」란 부제를 내건 이 전시회에는 창립에서 해체에 이르는 만 4년 동안 큰 일탈없이 꾸준히 동질의 호흡과 이념적 결속을 다져왔던 동인 5명이 각자 경험한 작업방향과 변모의 총체를 집약해 넣은 야심적인 작품 1점씩을 출품할 예정이다.
메타복스의 해체는 그것이 자연소멸이 아니라 그룹성원들의 일치된 의견에 따라 의도적으로 결행되는 것이며 특히 여타의 많은 그룹들이 뚜렷한 이념이나 문제제기없이 지리하게 세력집단학만을 꾀해가는 행태가 일반화돼 있는 학단풍토에서는 매우 이례적이고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룹 메타복스는 김찬동·안원찬·오상길·하민수·홍승일 등 홍익대서양화과 동문 5명이 뜻을 모아 85년 9월 창립했다.
메타복스의 창립은 평론가 서성녹의 말처럼 현대미술이 미니멀리즘·개념미술 등의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을 제외하면 화단의 쟁점이나 큰 흐름을 제대로 가닥잡지 못한 채 진공 속을 표류하고 있던 당시로서는 그 과감한 도전적 발언만으로도 많은 기대감과 저항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이들은 미니멀리즘을 비롯한 모더니즘미술의 획일화된 사고와 종래의 방법을 그대로 추종하는 맹목적성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표현의 구가, 물성에 대한 재인식을 강조했다.
메타복스는 특히 모더니즘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대상화시키고 개념성·익명성만을 추구해가는 것에 강력히 반발, 내면적 경험체계의 주관적·개성적 표출을 새로운 미학의 이념으로 내세웠다.
잃었던 개별성을 되찾고 이 개별성의 동시적 공존상태라 할 다원성을 통해 자기표현의 권리를 회복해간다는 것이 이들이 내건 기본적인 모토였다.
이 같은 모토를 반영, 메타복스 성원들의 작품내용은 대체로 순수페인팅보다는 오브제작업에 치중하는 공통성을 보이고 있으며 기존 모더니스트들과는 달리 사물을 도구화시켜 표현의 하위구조로 삼는다는 점이 하나의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다.
존속 4년 동안 메타복스는 「자체이념의 확산과 집약」이라는 양대 프로젝트를 실천하면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쌓아왔다. 대개「확산」프로젝트는 「엑소더스전」(86년 2월), 「한국현대미술의 최전 선전」(87년 2월), 「해빙전」(87년 4월), 「상하전」(87년 9월)등 4차례에 걸친 범그룹차원의 기획전을 통해, 「집약」프로젝트는 85년 2월의 창립전(관훈미술관)에서 88년 5월의 제4회전(미술회관)에 이르는 그룹전을 통해 모색·추구됐다.
이들이 주도한 기획전은 당시 의식의 공감대를 형성하던 대부분의 작가들이 망라됐을 뿐만 아니라 특히 「현대미술의 최전 선전」같은 경우는 참여작가의 상당수가 87년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제4회 청년작가전에 재초대되는 결과를 빚음으로써 화단의 평가와 함께 적어도 소정의 목적에 접근하는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확산에 이어지는 집약의 작업에서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게 메타복스 성원들의 자체분석이다. 그들은 그이유로 자체역량의 한계, 한국화단과 미술문화정책의 구조적 모순, 적절한 비평의 부재와 저널일반의 둔감함 등을 들고있으며 메타복스의 해체가 필연적이 될 수밖에 없게 된 것도 여기에서 연유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메타복스의 일원으로 활동해온 작가 오상길씨는 『과제를 해결 못한 자책감을 안고 그룹을 해체하지만 이 해체전은 단순히 고별인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80년대 추상미술과 한국현대미술 전반에 걸친 문제의식을 체기하고 또한 차례의 새로운 도약을 향한 도정에 재충전의 쉼표를 찍는 의식일 뿐』이라고 말했다.

<정교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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